쓰고있는글들/금요일 : 유럽의 통치 가문들 87

유럽의 통치 가문들...(67) 호엔슈타우펜 가문 : 황제의 가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벨프 가문이야기를 할려고 했는데 그게 뭐랄까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통치 내내 벨프 가문이랑 엮여서 차라리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가 황제가 되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할까합니다. 유럽의 통치 가문들...(67) 호엔슈타우펜 가문 : 황제의 가문 1137년 콘라트 3세는 황위의 후계자인 로마인의 왕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강력한 경쟁자는 황제 로타르 3세의 사위였던 벨프 가문 출신의 바이에른 공작이자 작센의 공작이었던 하인리히 10세였습니다. 하인리히 10세는 콘라트 3세의 형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의 처남이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당연히 처남보다는 동생인 콘라트를 지지했었습니다. 콘라트 3세는 하인리히 10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하인리히 10세의 두개의..

유럽의 통치 가문들..(66) 호엔슈타우펜 가문 : 황제의 가문이 되기까지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뭐랄까 황제의 가문이라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확 성장한 가문이었네요. 유럽의 통치 가문들..(66) 호엔슈타우펜 가문 : 황제의 가문이 되기까지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1세가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어서 아들인 프리드리히 2세가 슈바벤 공작령을 상속받았습니다. 그의 동생인 콘라트와 프리드리히 2세는 외삼촌인 황제 하인리히 5세가 즉위하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아마도 하인리히 5세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이며 조카들인 호엔슈타우펜 가문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썼던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와 콘라트는 황제의 대리인으로 행정관으로 일을 했으며 이것을 통해서 가문의 영지를 확장해나가는데 힘을 보태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유럽의 통치 가문들...(65) 호엔슈타우펜 가문 : 기원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이군요. 음냐 유럽의 통치 가문들...(65) 호엔슈타우펜 가문 : 기원 호엔슈타우펜 가문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최근에는 "슈타우퍼Sutauper"가문이라는 이름으로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 가문은 12세기와 13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를 이어간 가문이었습니다. 사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이라는 용어는 당대가 아니라 14세기 이후부터 쓰여진 말로 슈바벤에 있는 가문의 성인 "호엔슈타우펜 성"으로부터 나왔는데 이곳은 원래 산 이름이 슈타우펜 산이었지만 높다는 의미의 hohen이 붙어서 호엔슈타우펜 산이라고 알려졌고 성 이름도 호엔슈타우펜 성으로 알려지게 된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당대에 쓰던 가문의 이름인 슈타우퍼라는 이름을 써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럽의 통치 가문들...(64) 슈플린부르크 가문 : 황제 로타르 3세의 가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이 가문은 자료가 없거든요 그래서 신나서 합니다. -0-;;;; ...그런데 합스부르크 가문 이야기랑 같이 쓰니까 이거 막 헷갈리네요. 루돌프 1세 시대는 로타르 3세보다 훨씬 뒤의 이야기인데 쓰다보니 어랏 왜 로타르 3세가 황제가 될수 있었지 대공위시대 아니었나..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고 말입니다..ㅠ.ㅠ 유럽의 통치 가문들...(64) 슈플린부르크 가문 : 황제 로타르 3세의 가문 로타르 3세의 출신 가문으로 가문의 영지였던 쉬플링겐부르크에서 유래된 슈플린부르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가문은 사실 그리 강력한 가문이 아니었으며 또 오래도록 지속되는 가문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로타르 3세에게는 딸이 한명밖에 없었기에 가문은 그 딸로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가문의 선조는..

유럽의 통치 가문들...(63) 잘리어 가문 : 하인리히 5세와 마지막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토 가문은 황제들 이야기 읽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대충 넘어갔는데 잘리어 가문은 뭐랄까 교황과 황제의 갈등이 본격 시작되는 파트라서 그런지 막 읽고 싶어져서 많이 읽었습니다. -0-;;; 그래서 이렇게 길어졌네요 쿨럭 유럽의 통치 가문들...(63) 잘리어 가문 : 하인리히 5세와 마지막 황제 하인리히 5세는 형인 콘라트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지위를 박탈당한뒤 아버지인 하인리히 4세에 의해서 후계자로 선출되었습니다. 하인리히 5세는 형과 달리 아버지의 정책에 크게 반대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하인리히 4세는 점차 신하들과 마찰을 빚게 되었으며 하인리히 5세는 아버지와 신하들 사이에서 선택해야했을 것입니다. 결국 하인리히 5세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아버지에게..

유럽의 통치 가문들...(62) 잘리어 가문 : 황제 하인리히 3세와 하인리히 4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유럽의 통치 가문들...(62) 잘리어 가문 :황제 하인리히 3세와 하인리히 4세 잘리어 가문 출신으로 첫 황제가 된 콘라트 2세는 황제가 된 후부터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하인리히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이 바로 자신이 황제가 된 직후인 1028년 하인리히를 동공국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도록 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죽더라도 아들이 국왕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유리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인리히는 아버지인 콘라트 2세가 죽은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로마인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인리히의 아버지인 콘라트 2세는 아들에게 바이에른,슈바벤 그리고 카린시아 공작령을 부여했고 이것은 하인리히가 제국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중요한..

유럽의 통치 가문들...(61) 잘리어 가문 : 첫번째 황제 콘라트 2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이가문도 끝이군요. 이 가문 다음이 호엔슈타우펜인가? 유럽의 통치 가문들...(61) 잘리어 가문 : 첫번째 황제 콘라트 2세 잘리어 가문 출신으로 첫번째 황제가 되는 인물은 바로 콘라트 2세였습니다. 콘라트 2세는 황제 오토 1세의 외손자였던 카린시아의 공작 오토 1세의 손자였습니다. 황제 콘라트 2세는 어린시절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아버지인 슈파이어의 하인리히가 일찍 사망했으며 할아버지의 영지는 그가 아닌 숙부인 콘라트가 상속받았으며 아마도 이것은 그가 어린시절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숙부가 일찍 죽고 카린시아 공작령을 뺏기고 난뒤에, 콘라트는 어린 사촌이었던 카린시아의 콘라트를 돌봐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콘라트는..

유럽의 통치 가문들...(60) 잘리어 가문 : 카린시아의 오토 1세의 네 아들들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ㅠ.ㅠ 중세는 힘들어요 흑 유럽의 통치 가문들...(60) 잘리어 가문 : 카린시아의 오토 1세의 네 아들들 카린시아의 공작오토 1세에게는 네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중세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아마도 오토 1세의 후손이 오토 가문의 황제가 단절된 후에 황위를 얻에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보름스의 오토 1세의 아들인 슈파이어의 하인리히는 그의 첫째아들로 여겨지지만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기에 기록이 매우 적게 남아있습니다. 하인리히는 메츠의 아델하이트와 결혼해서 두명의 아이를 얻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메츠의 아델하이트는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메츠 백작이었던 모젤의 게르하르트의..

유럽의 통치 가문들...(59) 잘리어 가문 : 시작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글쓰다가 막 헝가리 이쪽을 좀 봤는데 엉엉엉..ㅠ.ㅠ 동유럽 가문은 진짜 모르겠습니다. --;;;; 유럽의 통치 가문들...(59) 잘리어 가문 : 시작 영어로는 살리안 가문 또는 살릭 가문 등으로 알려지게 되는 잘리어 가문은 1027년부터 1125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이어갔던 가문이었습니다. 기록에서 나오는 이 가문의 선조는 라인프랑켄 지역의 일부를 통치했던 베르너 5세 라고 합니다. 라인프랑켄 지역은 현재 헤센지역과 이 지역의 남부에 인접한 팔츠 지역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베르너 5세의 선조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지만, 현재 연구자들중 일부는 그가 9세기에 세력을 얻었던 위도니드Widonid가문의 후손으로 추정합니다. 위도니드 가문은 7세기 무렵 출발한 가문으..

유럽의 통치가문들...(58) 콘라딘 가문 : 슈바벤 공작, 동프랑크 국왕등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냥 오토 대제네 가문부터 시작할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카롤링거 가문이 동프랑크를 잃게 되는 첫번째 국왕이 콘라트 1세더라구요. 그래서 이번달 마지막은 그냥 이 가문하고 다음 가문으로 넘어가볼까합니다. =-= (사실 글을 읽은 것이 아까워서 그냥 씁니다. 쿨럭) 유럽의 통치가문들...(58) 콘라딘 가문 : 슈바벤 공작, 동프랑크 국왕등 콘라딘 가문은 비 카롤링거 가문 출신으로 첫번째 동프랑크 국왕이 된 콘라트 1세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콘라딘 가문은 프랑켄과 로타링기아,슈바벤등의 공작령을 통치했었으며 콘라트 1세 시절에는 동프랑크 왕국을 통치했었습니다. 콘라딘 가문의 선조는 832년 경 언급되는 란가우의 백작 게버하르트라고 합니다. 게브하르트의 아버지는 오를레앙의 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