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글쓰다가 막 헝가리 이쪽을 좀 봤는데 엉엉엉..ㅠ.ㅠ
동유럽 가문은 진짜 모르겠습니다. --;;;;
유럽의 통치 가문들...(59) 잘리어 가문 : 시작
영어로는 살리안 가문 또는 살릭 가문 등으로 알려지게 되는 잘리어 가문은 1027년부터 1125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이어갔던 가문이었습니다. 기록에서 나오는 이 가문의 선조는 라인프랑켄 지역의 일부를 통치했던 베르너 5세 라고 합니다. 라인프랑켄 지역은 현재 헤센지역과 이 지역의 남부에 인접한 팔츠 지역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베르너 5세의 선조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지만, 현재 연구자들중 일부는 그가 9세기에 세력을 얻었던 위도니드Widonid가문의 후손으로 추정합니다. 위도니드 가문은 7세기 무렵 출발한 가문으로 이 가문은 카롤링거 왕가를 지지하면서 세력을 크게 확장했었습니다. 위도니드 가문의 영지는 라인 강인근까지 뻗어나갔으며 아마도 베르너 5세 역시 이 위도니드 가문의 영지가 있던 지역을 통치했었기에 이 가문의 후손으로 추정하는듯합니다.
베르너 5세의 가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몇가지 기록으로부터 추정을 하는데 이것은 모순된 기록들이 나오고 있기에 애매한 상황인듯합니다. 기본적으로 베르너 5세는 이전의 보름스가우의 백작이었던 발라호Walaho라고도 알려진 베르너 4세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르너 4세는 보름스 백작 로베르토 3세의 딸인 오다와 결혼했는데, 로베르토 3세의 아들은 서프랑크로 가서 권력을 잡았으며 후에 서프랑크 국왕들인 외드와 로베르 1세의 아버지가 되는 "로베르 르 포르"였습니다. 로베르 르 포르가 서프랑크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그래서 라인프랑켄 지역에 있던 그의 영지를 누이의 남편이었던 베르너 4세가 물려받았던것입니다.
베르너 5세는 906년경 보름스가우의 백작으로 등장합니다.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애매한데 슈바벤 공작이었던 부르트하르트 2세의 딸이었던 하차나 아니면 카롤링거 가문 출신이 아닌 첫번째 동프랑크 국왕인 콘라트의 누이로 추정합니다. 콘라트의 누이로 추정하는 이유는 콘라트가 권력을 잡으면서 베르너 5세 역시 힘을 얻었을뿐만 아니라 아들의 이름 역시 콘라트이기 때문인듯합니다.
베르너 5세의 아들인 콘라트 데어 로테Konrad der Rote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오토 1세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그에게 충성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오토 1세는 그를 신임했으며 로타링기아의 공작 지위를 부여했으며, 자신의 딸인 루이트가르트를 시집보내게 됩니다. 콘라트는 오토 1세가 이탈리아로 갈때 함께 동행하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만, 오토 1세의 아들이자 콘라트의 처남이었던 슈바벤 공작 리우돌프와 함께 오토 1세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오토 1세는 자신의 호의를 배신한 콘라트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으며 그의 로타링기아 공작령을 뺏아버립니다. 한동안 콘라트와 오토 1세는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 오토 1세와 콘라트는 화해를 했으며 오토 1세는 콘라트를 용서하게 됩니다. 이후 콘라트는 마자르 족에 대한 침공에 대해서 오토 1세와 함께 맞서 싸우다가 955년 전사했습니다.
콘라트 데어 로테의 아들이자 오토 1세의 외손자로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은 오토는 어머니가 세살때 사망했으며 아버지 역시 다섯살 무렵 사망했기에 외할아버지인 오토 1세의 궁정에서 성장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와 화해했었으며 어린시절부터 외할아버지의 궁정에서 자라났기에 그는 안정적으로 아버지의 상속 영지인 라인프랑켄 지역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외삼촌인 오토 2세는 콘라트에게 카린시아 공작의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하지만 오토는 외삼촌인 오토 2세가 일찍 죽고 사촌인 오토 3세가 미성년으로 즉위하면서 오토 가문 내 분쟁관계 때문에 카린시아 공작 지위를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2세에게 뺏기게 됩니다. 하지만 오토는 보름스 공작이라는 지위는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2세가 죽자 콘라트는 카린시아 공작령을 무력으로 되찾으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토 3세가 쫓겨나고 바이에른 공작의 아들이었던 하인리히가 로마인의 왕으로 하인리히 2세로 선출됩니다. 하인리히 2세는 오토를 회유하기 위해서 그에게 카린시아 공작령을 부여해줬었습니다. 오토는 가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인 유디트와 결혼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일반적으로 유디트는 바이에른의 공작이었던 아르눌프의 손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카린시아의 공작 오토 1세의 자녀들중 네명의 아들이 알려져있는데 아들들중 둘은 성직자였고 둘은 세속의 영주였는데 특히 아들 부르노는 후에 교황 그레고리오 5세가 되었습니다.
잘리어라는 가문의 이름은 아마도 프랑크족의 법률이었던 "살리카 법"의 이름과 연결이 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살리카 법은 살릭 족의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메로빙거 왕가 출신으로 프랑크의 국왕이었던 클로비스가 이전까지 구문으로 전해지던 법률등을 묶어서 만든 성문법이었습니다. 이후 연대기 저자들은 이 살릭이라는 단어를 신분이 높은 프랑크 족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12세기가 되면서 연대기 저자들이 이 용어를 황제 콘라트 2세와 그 가계에 대해서 되면서 이 가문이 잘리어 가문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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