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하나로 끝낼려고 했는데 길어져서 두개로 나눕니다. -0-;;;;
유럽의 통치 가문들...(56)오토 가문 : 바이에른 공작 &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가문(두번째)
오토 3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하인리히 2세는 오토 1세의 후손이 아니라 오토 1세의 동생이었던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의 후손이었습니다.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의 아들이었던 하인리히는 형이 즉위한 초기 왕위를 노리고 형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여기에는 바이에른 공작이었던 에베르하르트와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에베르하르트는 오토가 왕위를 이을때쯤에 바이에른의 공작이 되었는데 바이에른 공작은 작센의 공작이었던 오토 가문 사람들만큼이나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에베르하르트의 아버지였던 아르눌프는 콘라트가 동프랑크의 국왕이 될때 경쟁자였으며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가 국왕이 되었을때도 경쟁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에베르하르트 역시 오토에 대해서 경쟁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것이었습니다. 특히 오토 1세가 즉위한 초기에 혼란한 상황이 되면서 에베르하르트는 반란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오토 1세는 이를 진압했지만 에베르하르트는 계속해서 여러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오토 1세의 동생이었던 하인리히가 연결됩니다. 하인리히는 바이에른 공작의 아르눌프의 딸이었던 유디트와 약혼했습니다. 당연히 바이에른 가문과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인리히 역시 왕위를 노리게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 형인 오토에게 진압당했으며 한동안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고 용서 받고 돌아오긴 했지만 형의 의심을 계속 받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토와 하인리히의 관계는 좋아지게 됩니다. 특히 오토 1세가 늘 눈엣가시거리였던 바이에른 공작을 억압하기 위해서 동생인 하인리히에게 바이에른 공작령을 줘서 동생을 바이에른 공작으로 만들면서 둘은 더욱더 평온하게 됩니다. 오토는 동생을 아르눌프의 딸인 유디트와 결혼시켰으며, 이를 연결고리로 오토는 동생에게 바이에른 공작령을 줬습니다. 하지만 바이에른 공작령의 영주들은 이 결정에 반발했으며 하인리히는 일단 바이에른 내부를 안정시키는데 집중해야해서 형과 대립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955년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1세가 사망했을때 그의 아들인 공작 하인리히 2세는 겨우 4살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공작령은 공작부인이었던 유디트가 섭정으로 통치합니다. 유디트는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로 자녀들의 정략결혼을 시켰으며 또 오토 1세의 황후였던 아델하이트와도 잘 지냈기에 외교적으로 안정을 추구했으며 또 바이에른 내정도 역시 조정을 잘했었습니다.
공작 하인리히 2세는 어머니의 통치를 바탕으로 강력한 영주로 성장합니다. 그는 황후 아델하이트의 조카였던 부르고뉴의 기젤라와 결혼했고 이것은 공작 하인리히 2세가 부르고뉴와의 동맹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슈바벤 계승문제를 두고 황제이자 사촌인 오토 2세와 갈등을 빚었으며 결국 황제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사로잡혔으며 바이에른 공작령을 사촌이었던 슈바벤 공작 오토에게 뺏기게 됩니다.
오토 2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공작 하인리히 2세가 풀려나게 됩니다. 그는 오토 2세의 아들인 오토 3세가 어린 아기인것을 이용해서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만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거의 없었으며 결국 오토 3세와 오토 3세의 어머니이자 섭정이 된 테오파뉴에게 승복해야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세력은 만만치 않았으며 결국 985년 바이에른 공작령을 되찾을수 있었으며 989년에는 카린시아 공작령마저 얻었습니다.
공작 하인리히 2세의 아들인 하인리히는 995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바이에른과 카린시아의 공작이 됩니다. 그는 육촌이었던 오토 3세가 1002년 초 갑자기 사망하면서 오토 3세의 뒤를 이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다른 제후들 역시 경쟁을 했지만 하인리히는 이들을 물리치고 국왕으로 선출됩니다. 하인히리 2세는 국왕으로 "로마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1004년 이탈리아 국왕이 되었으며 1014년에는 드디어 황제 하인리히 2세가 되었습니다. 황제 하인리히 2세는 폴란드와의 경쟁을 통해서 보헤미아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었습니다.
황제 하인리히 2세에게는 후손이 없었으며 결국 1024년 하인리히 2세가 죽으면서 오토 가문은 단절되었으며 황위는 잘리어 가문 출신으로 카린시아 공작 오토 1세의 손자였던 콘라트 2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가문의 영지중 작센 공작령은 황제 오토 1세 시절 다른 가문으로 넘어갔으며, 슈바벤 공작령 역시 가계가 단절되면서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바이에른 공작령의 경우 하인리히 2세의 처가인 룩셈부르크 가문에서 상속받았으며, 카린시아의 경우에는 원래 공작이었던 오토 1세의 외손자였던 잘리어 가문 출신의 오토1세가 받은 것이었으며 한동안 공작령을 뺏기긴 했었지만 하인리히 2세 로마인의 왕이 된뒤 다시 되돌려받게 됩니다. 그의 손자인 콘라트는 하인리히 2세의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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