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냥 오토 대제네 가문부터 시작할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카롤링거 가문이 동프랑크를 잃게 되는 첫번째 국왕이 콘라트 1세더라구요.
그래서 이번달 마지막은 그냥 이 가문하고 다음 가문으로 넘어가볼까합니다. =-=
(사실 글을 읽은 것이 아까워서 그냥 씁니다. 쿨럭)
유럽의 통치가문들...(58) 콘라딘 가문 : 슈바벤 공작, 동프랑크 국왕등
콘라딘 가문은 비 카롤링거 가문 출신으로 첫번째 동프랑크 국왕이 된 콘라트 1세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콘라딘 가문은 프랑켄과 로타링기아,슈바벤등의 공작령을 통치했었으며 콘라트 1세 시절에는 동프랑크 왕국을 통치했었습니다.
콘라딘 가문의 선조는 832년 경 언급되는 란가우의 백작 게버하르트라고 합니다. 게브하르트의 아버지는 오를레앙의 오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란가우의 오도로 추정하는데, 오도의 딸인 이멘가르트는 황제 카롤루스 2세의 첫번째 아내이기도 했습니다. 게버하르트는 황제 루도비쿠스 피우스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또 게브하르트의 아들들은 황제 루도비쿠스 피우스 시절의 권신이었던 아달하르트의 가까운 친척이라고도 기록되는데, 아달하르트의 조카가 게브하르트의 어머니일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게버하르트에게는 우도,발도,베렌툴프,베렌가르라는 네명의 아들이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가문이 성장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게버하르트의 손녀이자 베레가르의 딸인 오타가 동프랑크의 국왕이자 이탈리아의 황제가 되는 카린시아의 아르눌프와 결혼해서 루도비쿠스 4세의 아머니가 되면서입니다. 이것은 오타의 사촌들인 콘라트,에버하르트,게버하르트는 당연히 아르눌프를 지지했었으며 아르눌프는 이들에게 영지를 부여하면서 가문이 크게 성장했을뿐만 아니라 루도비쿠스 4세는 외가쪽 친척들에게 역시 의지했었습니다.
게버하르트의 손자이자 란가우의 백작 우도의 아들인 콘라트는 아르눌프에 의해서 튀링겐의 공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전 튀링겐 공작의 딸이어서 남편이 튀링겐의 공작이 될수 있는 명분을 부여했을 것입니다만 튀링겐 공작령을 계속 이어가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콘라트는 헤센 지역 대부분을 통치하게 되면서 후에 아들이 프랑켄 공작이 될 발판을 마련합니다. 콘라트의 장남으로 아버지에게 영지를 물려받아서 프랑켄의 공작이 되는 콘라트는 후에 동프랑크의 국왕 콘라트 1세로 선출됩니다. 하지만 그는 하인히리 데어 포글러에 비해서 영향력이 약했으며 결국 왕위를 그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형이 콘라트 1세가 후계자 없이 죽고 난뒤 프랑켄의 공작령은 콘라트 1세의 동생인 에버하르트에게 넘어가는데 에버하르트는 평생 오토 가문의 군주들인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나 오토 대제와 갈등을 빚었으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용서받는 등의 일을 반복했고 결국 그가 죽은뒤 프랑켄 공작령은 완전히 제국에 합병됩니다.
하지만 가문내에서도 편을 달리했었는데, 우도의 손자이며 국왕 콘라트 1세의 사촌으로 니데르난가우의 백작이었던 콘라트 쿠르츠볼트는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를 지지했었는데 특히 사촌이었던 프랑켄 공작 에버하르트가 반란을 일으켰을때 이를 진압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콘라트 쿠르츠볼트의 누이는 나헤가우 백작 베르너 5세와 결혼했고 둘은 오토 가문에 뒤를 이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잘리어 가문의 선조가 되기도 했습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imburg_200840.JPG
게버하르트의 손자이자 우도의 아들인 게버하르트는 가문의 세력을 발판으로 로타링기아의 공작으로 임명됩니다만 그는 마자르와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이후 로타링기아의 공작령은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게버하르트의 아들인 헤르만은 오토 1세에게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으며 이때문에 슈바벤 공작령을 얻게 됩니다. 물론 이후 슈바벤 공작령은 오토 1세의 아들인 리우돌프가 얻게 됩니다만 리우돌프가 아버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슈바벤 공작령을 뺏기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헤르만 1세의 외손자이자 황제 오토 1세의 친손자였던 오토가 다시 슈바벤 공작령을 되찾았습니다만 그는 미혼으로 전사했습니다.
오토가 죽은뒤 슈바벤 공작령은 다시 콘라딘 가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토의 뒤를 이어서 슈바벤 공작이 된 인물은 콘라트라는 인물로 슈바벤 공작 콘라트 1세가 됩니다. 그의 가계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지만아마도 국왕 콘라트 1세의 사촌중 한명의 손자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슈바벤 공작 콘라트 1세의 아들인 공작 헤르만 2세는 슈바벤 지역을 발판으로 세력을 넓혀나갔으며 1002년 오토 3세가 갑자기 죽자 그 역시 국왕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오토 가문 출신의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와 경쟁을 했지만 결국 하인리히가 왕위에 올랐으며 헤르만 2세는 그에게 머리를 숙여야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헤르만 2세의 아내와 황제 하인리히 2세의 어머니가 자매간이라는 것입니다.
헤르만 2세의 딸인 기젤라는 황제 하인리히 2세의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되는 잘리어 가문 출신의 황제 콘라트 2세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헤르만 2세의 아들인 헤르만3세는 미성년일때 아버지가 죽었으며 공작이 되었습니다. 이때문에 사촌이자 황제였던 하인리히 2세가 후견인으로 있었습니다. 황제는 헤르만 2세가 자신을 견제했던 것을 잊지 않았으며 이때문에 자신의정적이 될수도 있는 사촌을 견제했고 슈바벤 공작령에서의 황제의 권한을 강화했었습니다. 헤르만 3세는 18살의 나이로 미혼으로 사망했으며 콘라딘 가문은 헤르만 3세를 끝으로 단절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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