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ㅠ.ㅠ 중세는 힘들어요 흑
유럽의 통치 가문들...(60) 잘리어 가문 : 카린시아의 오토 1세의 네 아들들
카린시아의 공작오토 1세에게는 네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중세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아마도 오토 1세의 후손이 오토 가문의 황제가 단절된 후에 황위를 얻에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보름스의 오토 1세의 아들인 슈파이어의 하인리히는 그의 첫째아들로 여겨지지만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기에 기록이 매우 적게 남아있습니다. 하인리히는 메츠의 아델하이트와 결혼해서 두명의 아이를 얻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메츠의 아델하이트는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메츠 백작이었던 모젤의 게르하르트의 누이였을것으로 추정하는데, 게하르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2세와 대립관계에 있던 귀족들의 핵심인물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하인리히와 아델하이트 사이에서는 유디트라는 이름의 딸과 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아들 콘라트가 태어났습니다.
오토 1세의 아들인 카린시아의 부르노는 성직자가 되었는데 중세시대 성직자가 되는 것은 가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힘이 막강했기에 가문내에서 교회에 사람이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부르노처럼 고위 가문 출신의 사람이 성직자의 길을 가는 것은 앞날이 보장 된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부르노는 마인츠 대주교에게서 배웠으며 그의 스승중에는 오토 3세의 스승이자 후에 부르노와 대립관계가 되는 요하네스 필라가토스도 있었다고 합니다. 브루노는 친척이었던 오토 3세의 성직자로 함께 출정하기도 했었는데 아마 그만큼 그의 신임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황 요한 15세가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부르노는 오토 3세와 함께 로마로 가게 됩니다. 이와중에 교황 요한 15세가 사망했으며, 황제 오토 3세의 압력하에 부르노가 25살의 젊은 나이로 교황 그레고리오 5세가 됩니다. 부르노는 독일 출신의 첫 교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레고리오 5세는 로마에서 황제의 대리인으로 충실히 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그레고리오 5세에게 반발해서 대립교황으로 요하네스 필라가토를 요한 16세로 내세우게 됩니다만 황제에 의해서 진압당하게 됩니다.
오토 1세의 아들인 콘라트는 아마도 형이 죽은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영지를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콘라트의 아버지인 오토 1세는 카린시아의 공작령을 뺏겼었기에 오토 가문 출신의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 2세에 대해서 대립관계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하인리히가 로마인의 왕에 출마했을때 그 역시 로마인의 왕의 선거에 나가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오토 1세를 회유했으며 결국 오토 1세는 하인리히를 지지하면서 카린시아 공작령을 얻게 됩니다. 콘라트는 콘라딘 가문 출신이었던 슈바벤 공작 헤르만 2세의 딸인 슈바벤의 마틸다와 결혼했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잘리어 가문과 오토 가문의 갈등에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콘라트는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선출되었을때 하인리히가 아닌 장인인 헤르만 2세를 지지했었다고 합니다. 콘라트는 1004년 아버지가 죽은뒤 카린시아의 공작이 됩니다만 하인리히 2세는 자신을 반대했던 콘라트에 대해서 앙심을 품었으며, 콘라트와 그의 아내인 슈바벤의 마틸다가 친족관계라는 이유로 헤어지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콘라트는 죽을때까지 아내와 헤어지지 않았습니다.콘라트와 슈바벤의 마틸다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들인 콘라트와 부르노가 태어났습니다. 콘라트는 1011년 갑작스럽게 사망하는데 그의 아들은 미성년자였기에 황제는 카린시아의 공작령을 콘라트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신하인 아달베토에게 카린시아의 공작령을 넘기게 됩니다. 하지만 1024년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죽고 잘리어 가문 출신의 황제인 콘라트 2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콘라트는 사촌인 콘라트 2세를 지지했으며 결국 콘라트 2세는 1035년 사촌에게 카린시아의 공작령을 돌려주게 됩니다. 하지만 카린시아의 공작이 된 콘라트는 공작이 된지 4년만인 1039년 사망했으며 카린시아의 공작령은 황제 콘라트 2세의 아들인 하인리히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콘라트의 다른 아들인 부르노는 뷔르츠부르크의 주교로 역시 사촌인 황제 콘라트 2세와 그 아들인 하인리히 3세에게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으며 궁정에서도 많은 일을 했었습니다. 그는 1045년 황제 하인리히 3세와 함께 있다가 사고를 당했고 황제는 경상만 입었지만 다른 신하들은 중상을 입고 사망했는데 그중에 부르노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후대에 전설이 덧붙여지는데 사고가 일어나기전 부르노에게 악마가 나타나서 위협했지만 부르노를 굴하지 않았고 결국 악마가 사고를 일으켜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토 1세의 막내아들인 빌헬름은 형인 부르노처럼 성직자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형인 부르노처럼 매우 빠르게 고위 성직자가 되지 못했었습니다만 고위 가문 출신이었던 빌헬름은 평온한 성직자의 길을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카인 콘라트 2세가 황제가 되면서 그 역시 고위 성직자가 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1028년 슈트라스부르크의 주교가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슈트라스부르크는 제국내에서 가장 부유한 주교령중 하나였으며 이때문에 콘라트 2세는 자신의 측근 인물을 이 자리에 앉히고 싶어했습니다. 여러명이 거론되었지만 결국에는 콘라트 2세의 숙부였던 빌헬름이 이 주교지위를 얻게 됩니다. 빌헬름은 정치적인 면보다 주로 종교적인 면에 집중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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