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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57) 오토 가문 : 슈바벤 공작

엘아라 2022. 6.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후손은 별로 없는데 상속관계가 복잡해요 흑

 

유럽의 통치 가문들...(57) 오토 가문 : 슈바벤 공작 

 

오토 가문에서 슈바벤 공작령을 얻은 것은 10세기 중반이었습니다. 원래 슈바벤 공작이었던 부르샤르트 2세Burchard II가 925년 사망하면서 그의 공작령을 당시 국왕이었던 하인히리 데어 포글러가 맡게 됩니다. 부르샤르트 2세에게는 아들인 부르샤르트 3세가 있었지만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는 이 공작령을 라이벌 가문이기도 했었던 콘라딘 가문 출신인 헤르만 1세에게 줬었습니다. 헤르만 1세는 부르샤르트 2세의 아내였던 여성과 결혼해서 슈바벤 지역에 대한 권리를 강화했었습니다.

 

그리고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의 아들인 오토 1세가 황제가 된뒤 그의 장남인 루이돌프를 슈바벤 공작으로 만듭니다. 루이돌프는 오토 1세와 그의 첫번재 아내인 잉글랜드의 애드기스(이디스)의 아들이었습니다. 루이돌프는 슈바벤 공작 헤르만 1세의 딸인 이다와 결혼했는데 아내인 이다가 슈바벤 지역에 대한 상속권리가 있었기에 슈바벤 공작이 될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슈바벤 공작 루이돌프와 그의 아내인 이다

 

하지만 오토 1세가 이탈리아 문제로 인해서 이탈리아 왕비이자 부르고뉴 왕국의 공주였던 아델하이트와 재혼하자, 루이돌프는 자신의 후계자 지위가 흔들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델하이트가 아들을 낳자 결국 아버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인 오토 1세에게 진압당했으며 슈바벤 공작령을 뺏기게 됩니다. 오토 1세는 슈바벤 공작령을 부르샤르 2세의 아들이자 자신의 지지자였던 부르샤르 3세에게 줬습니다. 이후 루이돌프는 아버지와 화해를 해지만 슈바벤 공작령을 다시 얻지는 못했으며 957년 아버지를 도와 이탈리아 원정 도중 사망했습니다. 

 

황제 오토 1세와 두 아내인 애드기스와 아델하이트

 

루이돌프가 죽었을때 그에게는 두 자녀인 오토와 마틸데가 있었습니다. 후에 수녀가 되는 마틸데는 이때쯤 수녀원으로 갔었을것으로 추정되며 3살이었던 오토는 할아버지의 황제 오토 1세의 궁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때 오토 1세의 아들이자 나중에 후계자가 되는 오토 2세는 슈바벤의 오토와 비슷한 또래였으며 둘은 오토 1세의 궁정에서 함께 성장했고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오토 2세는 그를 "형제이자 조카"로 여겼었다고 합니다. 

 

누이인 마틸데와 함께 있는 슈바벤의 오토

 

973년 황제 오토 1세가 사망하고 오토 2세가 즉위했습니다. 이때 당시 슈바벤 공작이었던 부르샤르 3세 역시 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이에 황제 오토 2세는 자신과 가장 친했던 조카인 오토에게 슈바벤 공작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976년 사촌이었던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2세가 반란죄로 체포된뒤 바이에른 공작 지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이에 오토 2세는 슈바벤 공작인 오토에게 바이에른 공작령도 주었습니다. 슈바벤과 바이에른 공작이 된 오토는 더욱더 숙부인 오토 2세에게 충성을 했으며 이탈리아 남부의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 참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982년 전투에서 결국 오토는 전사했습니다. 오토는 미혼이었기에 후손이 없었으며, 또 형제도 없었기에 결국 슈바벤 공작령은 오토 2세의 지지자이자 콘라딘 가문 출신이었던 콘라트 1세에게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