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이 글은 영국 왕가를 따라가면서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베틴 가문 하려니 머리가 깨질것같아서 그냥 버려둔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하하
그래서 옛날 가문들 보기로 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이전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가문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래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초반은 자료도 없습니다. 그건 읽을 것이 적다는 의미겠죠 훗...
유럽의 통치 가문들...(55)오토 가문 :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가문(첫번째)
"오토 가문"정도로 해석될수 있는 오토넨 Ottonen 또는 오토니안 가문Ottonian dynasty은 신성로마제국의 첫번째 황제가 되는 오토 1세의 가문을 의미합니다. 가문의 시작은 오토 1세가 아니었지만, 오토 1세가 가문에서 첫 황제가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오토 가문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독일에서는 오토넨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가문의 선조인 루이돌프의 이름을 따서 리우돌핑거Liudolfinger라거나 작센 지방에서 시작했기에 작센 가문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오토넨 가문의 시작은 9세기 처음으로 작센 지역을 통치하는 인물이었던 리우돌프로부터 출발합니다. 리우돌프의 가계는 명확하지 않는데 일반적으로 고귀한 가문 출신이라는 언급정도로 알려져있습니다만 기록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리우돌프는 작센 지방을 통치하는 인물이긴했지만 그의 생전에 "작센의 공작"이 되었는지는 모호하다고 합니다. 카롤링거 왕가에 의해서 통치되던 제국 시절에 적어도 백작지위를 받았으며 그가 작센 지역을 통치하던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리우돌프는 프랑크 왕자의 딸인 오다라는 여성과 결혼했었는데 오다의 신분에 대해서는 일단 높은 신분의 여성인것은 분명해보이는듯합니다. 리우돌프와 오다 사이에서는 적어도 7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알려져있는데 그중 딸인 리우트가르트는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자 카롤링거 가문의 사람이었던 루도비쿠스 3세의 왕비이기도 했습니다.
리우돌프의 장남인 브루노(브룬)는 아버지의 뒤를 이었지만 바이킹 침입 시절에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게 됩니다. 브루노가 전사한뒤 그의 동생인 오토가 형의 뒤를 잇게 됩니다. 이전에 리우돌프가 처음에 작센 지역을 장악했었고 세력이 강성했었지만 오토 시절에는 거의 지위가 확정적으로 됩니다. 오토는 작센 지역을 거의 독립적으로 통치할수 있었으며 이때문에 후대에 그를 "공작"으로 칭하지만 당대에는 여전히 작센 지역의 백작정도로 표기된다고 합니다.
오토는 세명의 자녀가 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중 아들로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하인리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작센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세력을 점차 넓혀가고 있었으며 이것은 당시 동프랑크의 국왕이었던 콘라트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콘라트는 카롤링거 가문 출신이 아니었고 동프랑크 귀족들에 의해서 추대된 인물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경쟁자가 될수도 있었던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었으며 결국 하인리히는 콘라트의 뒤를 이어서 동프랑크의 국왕이 됩니다.
하인리히 데어 포글러는 동프랑크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는 카롤링거 왕가의 전체 영지를 장악하기 보다는 현재 독일 지역에 한정된 지역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려했으며 주변 공작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엘베강 인근 지역과 보헤미아 같은 지역을 통합하는등의 일을 통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고히 할수 있었고 이것은 아들인 오토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줄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하인리히의 딸인 헤드비히는 서프랑크의 강력한 영주였던 위그 르 그랑과 결혼했고, 헤드비히의 아들이 바로 위그 카페로 위그 카페가 서프랑크의 국왕이 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서프랑크 지역인 프랑스를 통치하게 됩니다. 또 다른 딸인 게르베가는 서프랑크의 국왕 루이 4세와 결혼했었습니다. 아들들중 오토는 아버지의 지위를 이었으며 다른 아들인 하인리히는 바이에른 공작이 되었습니다. 다른 아들인 브루노는 쾰른의 대주교이자 로타링기아의 공작이었으며 서프랑크 왕국의 섭정으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오토 1세는 아버지 생전에 후계자로 인정받았었습니다만 즉위한뒤 왕위를 노리는 사람들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그의 이복형인 탄크마르Thankmar나 동생인 하인리히가 대놓고 그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토는 이런 반란들을 진압했으며 나라를 통합하기 위해 결혼정책등을 이용했었습니다. 이후 위협이 될만한 다른 반란들 역시 진압했고 이것은 왕국내 강력한 영주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오토는 이렇게 동프랑크의 내부지역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이후 이교도인 마자르족을 물리치면서 더욱더 명성을 높여갑니다. 그리고 오토는 로마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인정받고 대관식을 올리게 됩니다. 오토 1세의 아들인 리우돌프는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집압당했으며 병으로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습니다. 그리고 황위는 리우돌프의 동생이었던 오토가 이어받게 됩니다.
18살에 황제로 즉위한 오토 2세는 아버지 생전에 "국왕"으로 황제인 아버지와 함께 공동 통치를 하면서 그의 계승권리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오토 2세는 자신의 후손들의 권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숙부였던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의 후손들에 대한 왕위계승권리를 제한했었습니다. 오토 2세는 제국의 범위는 동프랑크 지역을 넘어서 이탈리아를 통합하려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에는 이슬람 세력인 사라센들이 있었으며 이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권위가 약해졌으며 이것은 이전에 편입한 슬라브 지역의 봉기를 야기시키기도 했습니다. 오토 2세는 28살인 983년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황위는 3살인 아들 오토가 이어받습니다.
오토 3세는 어린 나이에 지위를 이어받았기에 그의 어머니이자 비잔틴 황제의 후손이었던 테오파누와 그의 할머니인 부르고뉴의 아델하이트가 오토 3세가 성인이 될땨까지 섭정으로 통치했었습니다. 오토 3세의 시절은 동프랑크 지역보다 이탈리아 지역에 더 집중한 경향이 있었는데 로마를 장악했고 교황들을 바꾸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슬라브지역에 대한 반란을 진압하려했었기에 이탈리아를 떠나 전쟁을 했었습니다만 이후 이탈리아 지역에서의 권한을 뺏기고 로마에서 쫓겨났으며 곧 사망합니다. 오토 3세는 결혼하지 않았기에 후계자 없이 사망했으며 황위는 오토 3세의 친척이었던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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