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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104)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6세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22. 12.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글쓰는 루틴이 적응이 안되네요 ㅠ.ㅠ

 

프랑스의 왕비들...(104)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6세의 왕비(두번째)

 

부르고뉴의 잔 필리프6세의 왕비 Joan of Burgundy Joan the Lame (French: Jeanne la Boiteuse), (French: Jeanne; c. 1293 – 12 December 1349),

 

잔은 남편인 필리프 드 발루아가 1328년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6세가 되면서 역시 프랑스의 왕비가 됩니다.

 

1337년 잉글랜드와 백년전쟁이 시작되자, 필리프 6세는 아내인 부르고뉴의 잔을 섭정으로 임명합니다. 특히 필리프 6세는 잉글랜드와의 전쟁으로 끊임없이 전장으로 나가야했고, 그는 자신이 없는동안 모든 왕권을 아내에게 일임했었습니다. 이것은 필리프 6세가 아내인 잔을 매우 믿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또한 필리프 6세가 궁정 신하들을 믿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잔은 남편의 믿음대로 매우 강한 의지로 남편이 군사작전을 하는 동안 후방을 전혀 신경쓰지 않게 훌륭한 섭정으로 일을 했습니다.

 

필리프 6세와 부르고뉴의 잔의 대관식

 

하지만 잔에게 좋은 평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잔은 자신이 선호하는 고향사람들인 부르고뉴 지역 사람들을 많이 등용했으며 이것은 다른 파 사람들의 불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전쟁에 나가있는 남편을 도우려던 잔의 행동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잔에 대해서 나쁘게 평가하는 연대기 작가들도 있었고 이것은 그녀의 신체적 기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la Boiteuse(the lamd,절름발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잔은 교육을 많이 받았던 여성으로 당대에는 학자들과 비슷한 급의 학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필사본을 읽히고 주석을 달았으며 몇몇 작품들을 후원하기도 했었습니다.

 

부르고뉴의 잔

 

잔은 13491212일 흑사병으로 사망했으며, 생 드니에 묻혔습니다.

 

잔은 필리프 6세와의 사이에서 아홉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만,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는 둘밖에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첫째 아들은 장으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의 국왕 장 2세가 됩니다. 둘째아들은 필리프로 오를레앙 공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형과 함께 잉글랜드의 포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만 후손없이 사망했습니다. 딸인 마리는 7살 정도때까지 살았고 브라반트 공작의 아들과 결혼까지 했습니다만 결혼직후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