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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102) 잔 데브뢰 : 샤를 4세의 왕비

엘아라 2022. 9.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프랑스 왕비들도 많이 했군요. 잔 데브뢰만 하고 나면 발루아 가문으로 넘어가니 말입니다.

 

 

프랑스의 왕비들...(102) 잔 데브뢰 : 샤를 4세의 왕비

 

 

 잔 데브뢰
Joan of Évreux

Jeanne d'Évreux;

(1310 – 4 March 1371)

 


샤를 4세의 세번째 부인이 되는 잔 데브뢰는 에브뢰 백작 루이와그의 아내인 아르투아의 마르거리트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루이 데브뢰는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3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브라반트의 마리의 아들로 필리프4세의 이복동생이기도 했습니다.그의 어머니인 브라반트의 마리는 왕비였을때 궁정내에서 견제를 많이 받았을뿐만 아니라 필리프 4세 시절에는 궁정에서 거의 영향력이 없었기에 루이 역시 큰 힘을 갖지는 못했었습니다.

 

루이 데브뢰와 그의 아내인 아르투아의 마르거리트의 무덤 조상


잔의 오빠인 필리프는 필리프 5세 시절 루이 10세의 외동딸이었던 잔과 결혼했었습니다. 이 결혼은 사실상 잔이 가지고 있던 상파뉴 백작령에 대한 상속권리를 프랑스 왕가에 귀속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하지만 필리프 데브뢰 입장에서는 이 결혼으로 인해서 지참금을 많이 가져오는 아내를 얻는 것이었으며 또 나바라등의 상속권리 역시 주장할수 있는 것이기에 이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3세에게 봉신으로 충성 맹세를 하는 나바라의 펠리페 3세(필리프 데브뢰)


잔의 부모는 잔이 어린시절 사망했으며, 잔은 할머니인 브라반트의 마리와 오빠인 필리프의 보호아래 성장했습니다.  잔은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을 것입니다만 1324년 샤를4세의 왕비인 룩셈부르크의 마리가 사고로 사망하면서 프랑스의 왕비가 됩니다.샤를 4세는 후계자가 될 아들을 서둘러 얻길 바라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서둘러 재혼해야했습니다.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찾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에  가까운 친척이었지만 적정혼기에 도달했다고 여겨진 잔 데브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을것입니다. 사실 아내를 잃은 샤를 4세는 애도기간이 지난후에 재혼해야했지만 후계자가 급했던 그는 기다릴수 업었으며결국 서둘러 재혼했었습니다. 둘은 사촌관계여였기에당연히 교황의 사면이 필요했으며 교황의 사면을 받은 후인 1325년 7월 왕비로 대관식을 올리게 됩니다.
 

샤를 4세


잔은 1326년 첫번째 딸인 잔을 낳았고 다음해인 1327년에는 둘째딸인 마리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을때인 1328년 남편인 샤를 4세가 사망합니다. 잔이 임신하고 있었기에 만약 잔의 아이가 아들이라면 샤를 4세의 뒤를 이어서 국왕이 될수 있었기에 루이 10세의 상황처럼 잠시 왕위는 비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2달뒤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습니다 잔이 딸을 낳자 프랑스 왕위계승 문제는 복잡해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필리프 5세와 샤를 4세가 살리카 법을 주장하면서 왕위에 올랐기에 루이 10세와 필리프 5세 그리고 샤를 4세의 딸들에게는 왕위계승권리가 없었고 결국 프랑스 왕위는 필리프 3세의 손자이자 필리프 4세의 조카인 발루아 백작 필리프에게 돌아갔고 그는 국왕 필리프 6세가 됩니다.

 

국왕 필리프 6세


잔은 딸이 프랑스 왕위를 주장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신 나바라 왕위는 주장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나바라 왕국과 상파뉴 백작령은 필리프 4세의 왕비였던 잔(나바라의 후아나1세)를 통해서 상속받은 것으로 여성 계승권리를 주장할수 있었습니다.그렇기에 후아나 1세와 혈연적 관계가 없는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곳의 상속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필리프 5세가 조카인 잔을 필리프 데브뢰와 결혼시키면서 지참금을 주면서 대신 상파뉴 백작령을 얻었지마 여전히 상속문제는 애매한 것이었고 결국 필리프 6세는 여러가지 조정을 합니다. 여기에는 상파뉴 백작령에 대한 권리와 나바라 왕국에 대한 권리를 조정하는 것이었는데 상파뉴 백작령에 대한 권리는 돈으로 해결했었으며 나바라 왕국은 루이 10세의 딸로 필리프 5세나 샤를 4세의 딸들보다 훨씬 더 높은 상속권리를 가진 잔이 나바라왕위를 얻었으며 잔 데브뢰의 오빠인 필리프 데브뢰는 나바라의 국왕이 되어습니다.

 

조카인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와 프랑스의 장 2세 그리고 조카인 나바라의 블랑쉬(필리프 6세의 왕비)와 함께 있는 잔 데브뢰


잔은 전 왕비로 궁정에서 존경받는 삶을 살았으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과부였으며 아들이 없었기에 아마도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만 존경받는 왕비로 어느정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잔은 자신이 가장 좋아한 거처였던  브리-콤트-로베르 성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371년 잔은 사망했고 생드니에 있는 남편곁에 묻히게 됩니다.

 

장 2세의 장남이자 미래의 샤를 6세가 태어났을때 아이의 세례식에서 아이를 안고 가는 잔 데브뢰


잔은 샤를 4세와의 사이에서 모두 세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큰딸인 잔은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했으며 둘째딸인 마리 역시 10대에 사망했습니다.막내이자 유복자였던 블랑쉬는 필리프 6세의 둘째아들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와 결혼했지만 후손없이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