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동유럽은 진짜 모르겠습니다 엉엉엉..ㅠ.ㅠ
프랑스의 왕비들...(96)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 루이 10세의 왕비(두번째)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프랑스의 클레멩스 왕비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비
Clementia of Hungary
Clémence;
(1293–13 October 1328)
클레멘티나의 씰
1314년 필리프 4세의 두 며느리가 간통혐의로 갇히게 됩니다. 아내가 간통으로 감옥에 갇힌후 루이는 곧 재혼 상대를 물색하게 됩니다. 그는 딸인 잔 밖에 없었기에 아마도 아내를 새로 얻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루이의 숙부였던 발루아 백작 샤를은 루이에게 처조카였던 클레멘티나를 신붓감으로 추천합니다. 샤를은 클레멘티나의 고모였던 앙주의 마르거리트와 결혼했습니다. 카를로 2세는 딸을 발루아 백작과 결혼시키면서 지참금으로 프랑스내에 있던 아버지의 영지였던 앙주 백작령과 멘 백작령을 줬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프랑스와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멀리 떨어져있어서 관리하기 힘들었던 영지를 이런식으로 정리했던것도 있을 것입니다.
1314년 필리프 4세가 사망하고 루이 10세가 즉위한뒤 그는 본격적으로 신붓감을 찾는데 1314년 말 클레멘티나가 머물고 있던 나폴리 궁정으로 사절을 파견해서 결혼협상을 진행합니다. 루이 10세는 아내인 부르고뉴의 마르거리트와의 결혼을 무효로 하지 않았기에 사실 바로 재혼을 하는 것은 중혼이 될수 있었습니다만 1315년 5월 마르거리트가 사망했기에 루이는 클레멘티나와 결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클레멘티나는 1315년 8월 프랑스로 왔으며 1315년 8월 19일 루이 10세와 결혼식을 했으며 8월 24일 랭스에서 왕비로 대관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클레멘티나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1년도 하지 못했습니다. 1316년 6월 루이 10세는 갑작스럽게 사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클레멘티나는 임신중이었고 이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루이 10세의 동생이었던 필리프는 루이 10세의 딸이었던 잔의 어머니가 간통혐의를 받았기에 잔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게다가 그는 임신중인 왕비 역시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스스로 섭정이 되었으며 클레멘티나가 아이를 낳을때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1316년 11월 15일 클레멘티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는 장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태어나자마자 국왕으로써 인정을 받게 됩니다만, 태어난지 5일만에 사망합니다. 장이 죽은뒤 왕위 계승에 대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섭정으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던 필리프는 조카이자 출생을 의심스러워하던 잔이 아니라 자신이 왕위를 이어받아야한다고 주장했으며, 비록 잔이 루이 10세의 친자라고 하더라도 여성이기에 "살리카법"에 따라서 자신이 왕위를 이어야한다고 주장했고 프랑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서 그는 필리프 5세가 됩니다.
아마 남편과 아들의 연이은 죽음은 클레멘티나에게 큰 충격을 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클레멘티나는 프랑스의 왕비였으며 프랑스에서 대접을 살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필리프 5세는 클레멘티나와 마찰을 빚는데 클레멘티나는 남편인 루이 10세가 주기로한 재산을 달라고 필리프 5세에게 요구햇으며, 필리프 5세는 형수가 재산을 함부로 써버리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었습니다. 클레멘티나는 이에 대해서 매우 분개했으며 나폴리에 있는 가족들은 물론 교황에게까지도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갈등 때문에 클레멘티나는 궁정을 떠나서 아비뇽으로 갔다가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수녀원으로 갔었습니다. 하지만 1321년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클레멘티나는 아마도 재산을 모두 돌려받았었을 것입니다. 클레멘티나는 파리의 왕실 궁정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으며 재산을 가지고 남편과 앙주 가문에 대한 추모를 하는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이를테면 증조부였던 시칠리아의 국왕 카를로 1세의 무덤 조상을 조성하기도 했고, 또 화려한 성유물함을 만들어서 헝가리에 있는 올케언니에게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클레멘티나는 1328년 10월 사망했으며, 파리에 있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원중 하나였던 자코뱅 수도원에 묻혔었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후에 철거되엇으며 클레멘티나의 무덤 조상은 현재 생드니에 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쓰고있는글들 > 목요일 : 프랑스의왕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왕비들...(98)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5세의 왕비 (두번째) (0) | 2022.08.04 |
---|---|
프랑스의 왕비들...(97)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5세의 왕비 (첫번째) (0) | 2022.07.28 |
프랑스의 왕비들...(95)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 루이 10세의 왕비(첫번째) (0) | 2022.07.14 |
프랑스의 왕비들...(94)부르고뉴의 마르거리트 : 루이 10세의 왕비 (0) | 2022.07.07 |
프랑스의 왕비들...(93) 나바라의 후아나 1세 : 필리프 4세의 왕비 (0) | 2022.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