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쓰다보니까 길어지네요 =-=
프랑스의 왕비들...(98)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5세의 왕비 (두번째)
부르고뉴의 잔 2세
부르고뉴와 아르투아의 여백작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비
Joan II, Countess of Burgundy
Jeanne;
(c. 1291 – 21 January 1330),
부르고뉴 백작 오토 4세는 부르고뉴 백작이긴했지만 부르고뉴 지방에 대해서 통치권력을 행사할수 없었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아마도 프랑스의 국왕인 필리프 4세와 손을 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필리프 4세의 차남과 자신의 장녀를 결혼시키면서 지참금으로 부르고뉴 백작령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그가 프랑스 국왕의 지원을 받아서 부르고뉴 백작령에 대한 실질적인 통치권을 손에 넣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때에는 오토 4세의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기에 백작령에 대한 상속을 넘길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1300년 오토 4세의 아들인 로베르가 태어나면서 일이 좀 미묘해지게 됩니다.오토 4세는 서둘러 부르고뉴 백작령을 딸에게 상속시킨것을 후회했었습니다만 1303년 사망하면서 아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수 있는 기회마저 없게 됩니다.
잔의 어머니인 마우는 남편이 죽고 난뒤 부르고뉴 백작령의 섭정이 되었으며 이전에 아르투아 백작령에 대한 권리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우는 아들의 권리와 딸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우는 필리프 4세에게 잔을 차남인 필리프가 아니라 후계자가 될 장남 루이와 결혼시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게됩니다. 하지만 필리프 4세는 이미 루이에 대한 결혼 협상을 끝낸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결혼은 그대로 진행되기로 했으며 잔의 권리 역시 그대로 인정되었습니다만 필리프 4세는 이에 상응하는 연금등을 지급하기로 하게 됩니다.
1307년 잔은 필리프 4세의 차남인 푸아투 백작 필리프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이때 잔의 어머니인 마우는 다른 딸인 블랑쉬를 필리프 4세의 막내아들인 샤를과 결혼시키길 원했고 필리프 4세와 다시 한번 결혼협상을 진행하고 엄청난 지참금을 주기로 하고나서 블랑쉬와 샤를의 결혼도 결정되게 되었으며 1308년 블랑쉬 역시 프랑스 왕가로 시집오게 됩니다.
잔은 궁정에서 손윗동서인 부르고뉴의 마르거리트와 손아랫동생이자 여동생인 블랑쉬와 함께 지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비슷한 또래에 남편들이 형제들이었기에 어느정도 친분관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매우 달랐었습니다. 마르거리트의 남편 루이는 아내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마르거리트 역시 남편과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동생인 블랑쉬 역시 남편과 불화했었습니다. 하지만 잔과 필리프는 매우 달랐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필리프는 형인 루이와 동생인 샤를과는 달리 아내와의 사이에서 금세 많은 아이들을 얻었으며 또 아내에게 여러가지 경제적 이익을 부여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또 훗날 투르 드 넬스 사건에서 필리프는 어떻게든 아내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으로 봐서도 부부사이가 좋았다고 추정할수 있습니다.
1314년 투르 드 넬스 사건이 일어나게 되자 잔 역시 동서들과 함께 의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동서들과 달리 잔의 남편인 필리프는 아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며, 두 동서들은 간통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잔은 불륜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둘의 간통을 알고있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잔은 무죄로 석방되게 됩니다.
1316년 시아주버니인 루이 10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장이 겨우 5일만 살아남은뒤 잔의 남편인 필리프가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5세로 즉위합니다. 잔은 남편이 국왕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왕비가 됩니다. 잔은 여동생을 풀려나게 하거나 할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블랑쉬가 좀더 편안한 삶을 살수 있도록 영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필리프 5세는 조카인 잔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에 잔의 외삼촌인 부르고뉴 공작 외드 4세가 협상을 위해서 파리로 오게 됩니다. 필리프 5세는 부르고뉴 공작을 달래기 위해서 자신의 장녀인 잔에게 부르고뉴 백작령을 지참금으로 줘서 외드 4세에게 시집보내기로 합니다. 당연히 인근의 부르고뉴 백작령을 손에 넣는 것은 공작에게 이익이었기에 이를 수락하고 대신 조카인 잔의 권리에 대해서 더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잔의 남편인 필리프 5세는 1322년 사망했습니다. 필리프 5세와 잔 사이에서는 살아남은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는 필리프의 동생인 샤를이 이어받게 됩니다. 잔은 남편이 죽은뒤 부르고뉴 백작령으로 돌아갔습니다. 1329년에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어머니의 아르투아 백작령도 상속받았습니다만, 잔은 1330년 사망했습니다. 잔이 죽은뒤 부르고뉴와 아르투아 백작령은 장녀이자 부르고뉴 공작부인인 잔에게 돌아갔으며 이때부터 부르고뉴 공작령과 부르고뉴 백작령은 통합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잔은 필리프 5세와의 사이에서 다섯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위의 네명은 딸이었고 막내가 아들인 루이였습니다. 하지만 루이는 1살이 되기전 사망했으며 이때문에 필리프 5세가 살리카법을 주장하면서 왕위를 이었기에 왕위는 자연스럽게 동생인 샤를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잔의 딸들중 장녀인 잔은 부르고뉴 공작과 결혼했었습니다. 둘째딸인 마르거리트는 플랑드르 백작과 결혼했었습니다. 셋째딸인 이사벨은 비엔누아의 도팽이었던 기그 8세와 결혼했었습니다. 기그 8세는 루이 10세의 왕비였던 헝가리의 클레멘티나의 언니인 베아트리체의 아들이기도 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딸인 블랑쉬는 수녀가 되었습니다.
부르고뉴 백작령은 잔2세의 딸인 잔3세가 부르고뉴 공작과 결혼하면서 부르고뉴 공작령과 합쳐지게 됩니다.잔3세의 손자인 필리프 1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부르고뉴 공작령을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플랑드르 백작령의 상속녀이자 잔의 증손녀이기도 한 플랑드르의 마르거리트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부부는 부르고뉴 공작령과 부르고뉴 백작령 그리고 플랑드르 백작령등의 거대한 영지를 상속받게 됩니다만, 필리프 1세는 후계자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문제가 됩니다.필리프 1세가 죽은뒤 국왕 장 2세는 부르고뉴 공작령을 왕실 공작령으로 선언하고 몰수했습니다. 그리고 이 공작령을 자신의 아들인 필리프 2세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부르고뉴 백작령의 상속권리가 남았었기에 문제가 되었는데 사실 부르고뉴 백작령의 상속권리는 필리프 1세의 아내로 플랑드르의 여백작이었던 마르거리트에게 있었습니다. 마르거리트는 부르고뉴 백작령뿐만 아니라 플랑드르 백작령의 상속녀였기에 마르거리트는 결국 부르고뉴 공작이 되는 필리프 2세와 재혼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필리프 2세이후 부르고뉴 공작은 부르고뉴 지역 뿐만 아니라 플랑드르 지역까지도 통치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2세는 샤를 6세의 숙부이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섭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장 상 푀르는 샤를 6세 시절 사촌이자 샤를 6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과 권력 다툼을 했던 그 부르고뉴 공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상 푀르의 증손녀가 바로 부르고뉴 공작령의 상속녀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시집가는 마리 드 부르고뉴였습니다
.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쓰고있는글들 > 목요일 : 프랑스의왕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왕비들...(100) 룩셈부르크의 마리 : 샤를 4세의 왕비 (첫번째) (0) | 2022.09.08 |
---|---|
프랑스의 왕비들...(99) 부르고뉴의 블랑쉬 : 샤를 4세의 왕비 (1) | 2022.09.01 |
프랑스의 왕비들...(97)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5세의 왕비 (첫번째) (0) | 2022.07.28 |
프랑스의 왕비들...(96)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 루이 10세의 왕비(두번째) (0) | 2022.07.21 |
프랑스의 왕비들...(95)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 루이 10세의 왕비(첫번째) (0) | 2022.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