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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97)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5세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22. 7.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부르고뉴 공작 가문이랑 부르고뉴 백작 가문..ㅠ.ㅠ 이거 설명하기 너무 힘들어요 =-=

 

프랑스의 왕비들...(97) 부르고뉴의 잔 : 필리프 5세의 왕비 (첫번째)

 

부르고뉴의 잔 2세

부르고뉴와 아르투아의 여백작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비

Joan II, Countess of Burgundy 

Jeanne;

(c. 1291 – 21 January 1330), 

 

부르고뉴 여백작으로 잔 2세로 알려진 부르고뉴의 잔은 부르고뉴 백작 오토 4세와 그의 아내인 아르투아의 마우(마틸데)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르고뉴 백작령은 일명 "프랑슈-콩테"지역의 일부로 원래는 중세시대의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습니다. 이곳은 프랑스 동부지역으로 부르고뉴 왕국의 일부였었습니다. 이후 부르고뉴 왕국은 프랑크 왕국에 합병이 되었는데, 프랑스 왕국이 동 프랑크, 서프랑크, 중앙프랑크 왕국으로 나뉠때 부르고뉴 공작령은 서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고 부르고뉴 백작령은 중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부르고뉴 공작령은 프랑스의 공작령이 되었으며, 부르고뉴 백작령은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됩니다. 부르고뉴 공작령과 부르고뉴 백작령은 서로 인근 지역이었기에 영향이 있었으며 특히 이지역의 통치자들은 서로의 영지를 노리기도 했었습니다.이를테면 위그 카페의 동생인 외드는 부르고뉴 공작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부르고뉴 공작 앙리 1세로 알려집니다. 그는 후손이 없었고 이때문에 아내의 아들이자 부르고뉴 백작이었던 오토-빌헬름을 후계자로 만들려했었습니다. 물론 위그 카페의 아들인 로베르 2세가 혈연관계를 내세워서 부르고뉴 공작령을 오토-빌헬름에게서 뺏기도 했었습니다. 

 

부르고뉴 백작령은 이렇게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에서 애매한 상황이었고 이것은 두 나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부르고뉴 백작령에 대해서 "프랑슈-콩테"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 시절 다시 한번 종주권을 확인했을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1세가 부르고뉴 백작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부르고뉴 백작령에 대한 통치 권리를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하지만 이후 부르고뉴 백작령의 상속문제는 좀더 복잡하게 흘러가게 되며 결국 잔이 필리프 5세와 결혼하면서 부르고뉴 백작령은 프랑스 왕가로 넘어갔으며 이후 필리프 5세가 딸을 부르고뉴 공작에게 시집보내면서 지참금으로 부르고뉴 백작령도 줬기에 결국 부르고뉴 백작령은 부르고뉴 공작령과 합쳐지게 됩니다.

 

부르고뉴 공작령과 부르고뉴 백작령

 

잔의 가문은 대대로 부르고뉴 백작령을 통치했던 이브라 가문(또는 안스카리드 가문)이라고 합니다. 이 가문은 9세기 이브라의 마르크그라프였던 안스카르 1세로부터 출발한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안스카르 1세의 손자이자 이탈리아의 국왕 베렌가리우스 1세의 외손자였던 베렌가리우스 2세가 이탈리아에 국왕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을 성립한 오토 대제와의 다툼에서 패배했으며 베렌가리우스 2세의 손자였던 오토-빌헬름은 부르고뉴 백작으로 만족해야했었습니다. 오토-빌헬름의 어머니는 부르고뉴 공작이자 위그 카페의 동생이었던 앙리 1세와 재혼했었고, 앙리 1세는 부르고뉴 공작령의 후계자로 의붓아들인 오토-빌헬름을 지명했었습니다만 위그 카페의 아들이었던 로베르 2세가 부르고뉴 공작령의 상속을 주장했고 부르고뉴 공작령은 결국 로베르 2세에게 돌아갔습니다.이후 로베르 2세의 아들이었던 로베르가 부르고뉴 공작령을 상속받으면서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인 부르고뉴 공작 가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12세기 부르고뉴 백작이었던 레지날도3세(레나우 3세)는 황제 로타르 3세 시절 신성로마제국에서 백작령을 독립시키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그는 갑작스럽게 사망하는데 외동딸인 베아트리체만이 남게 됩니다. 베아트리체는 백작령의 상속녀였지만 숙부인 마콩의 빌헬름(기욤)이 백작령을 통치했었습니다. 이후 그는 부르고뉴 백작령의 상속에대해서 욕심을 냈습니다만 여기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관여합니다.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부르고뉴의 상속녀인 베아트리체와 결혼했고 부르고뉴 백작령은 황제의 가문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후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상속문제 역시 복잡해졌기에 결국 부르고뉴 백작령은 프리드리히 1세의 손녀인 베아트리체에게 상속되었으며 베아트리체는 메라니아 공작 오토 1세(프랑스의 필리프 2세의 왕비였던 메라니아의 아그네스의 오빠)와 결혼했고 부르고뉴 백작령은 안데흐 가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베아트리체의 결혼

 

한편 베아트리체 1세의 숙부였던 마콩 백작 빌헬름은 부르고뉴 백작령을 황제의 가문에 뺏기게 되지만 그와 그의 후손들은 여전히 부르고뉴 백작령의 상속권리를 주장했었습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 2세와 메라니아의 오토 1세의 딸인 아델하이트가 부르고뉴 백작령의 상속녀가 되는데 그녀는 마콩 백작 빌헬름의 후손중 한명이었던 살롱 백작 위그와 결혼했으며 결국 부르고뉴 백작령은 다시 이브라 가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위그와 아델하이트의 아들이 바로 잔의 아버지였던 부르고뉴 백작 오토 4세였습니다.

 

13세기 이후 부르고뉴 백작령의 문장

 

잔의 어머니인 아르투아의 마우는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2세의 딸이었습니다. 로베르 2세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8세의 손자로 아르투아 백작가문 역시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이기도 했습니다. 마우는 후에 동생인 필리프가 일찍 사망하자 아르투아 백작령에 대한 계승을 주장했으며 결국 아르투아 백작령은 필리프의 아들인 로베르가 아닌 마우가 상속받게 되었고 이후 이 아르투아 백작령 역시 잔이 상속받게 됩니다.

 

아르투아의 마우, 잔의 어머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