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헝가리의 클레멘티나라고 해서 헝가리 국왕의 딸인줄 알았더니 여기도 정치관계가 복잡하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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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95)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 루이 10세의 왕비(첫번째)
헝가리의 클레멘티나
프랑스의 클레멩스 왕비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비
Clementia of Hungary
Clémence;
(1293–13 October 1328
프랑스에서 "클레멩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헝가리의 클레멘티나는 앙주의 샤를 마르텔(이탈리아식으로는 카를로 마르텔, 헝가리식으로는 마르텔 카롤리)와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클레멘티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클레멘티나의 아버지인 앙주의 샤를 마르텔(카를로 마르텔)은 앙주 가문 출신의 나폴리 국왕이었던 카를로 2세와 헝가리의 마리아의 아들이었습니다. 나폴리 왕국은 사실 시칠리아 왕국의 일부였었습니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8세의 막내아들인 앙주 백작 샤를은 교황으로부터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를 제안받고 시칠리아 왕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게됩니다. 하지만 1282년 시칠리아 섬에서 발생한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사건을 통해서 시칠리아 섬이 독립했으며 이때문에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 섬을 중심으로 하는 시칠리아 왕국과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나폴리 왕국으로 분리되게됩니다. 그리고 이 나폴리 왕국을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카를로 1세의 아들인 카를로 2세였습니다. 이때문에 나폴리 왕가는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이었습니다.
카를로 2세는 헝가리의 공주였던 마리아와 결혼했었습니다. 마리아는 헝가리의 국왕 슈테판 5세(헝가리어로 이스트반 5세)의 딸이었습니다. 카를로 2세와 마리아의 결혼은 카를로 2세의 아버지인 카를로 1세의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식이 진행됩니다. 카를로 1세는 지중해를 장악하고 비잔틴 제국을 공격해서 장악할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기 위한 동맹으로 헝가리를 선택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들인 카를로 2세를 헝가리 국왕의 딸인 마리아와 결혼시킨것이었습니다.
클레멘티나의 아버지인 카를로 마르텔은 당연히 나폴리의 왕위계승자였습니다만 외가인 헝가리 왕가의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하면서 그는 헝가리의 왕위를 얻게 될 기회를 얻습니다. 헝가리의 마리아의 남동생인 라디슬라프 4세(헝가리어로는 라즐로 4세)는 1290년 후계자 없이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라즐로 4세의 네명의 누나들와 그 자녀들이 헝가리 왕위를 두고 다투게 됩니다. 게다가 가문의 마지막 남성후손이었던 언드라시 역시 있었습니다. 언드라시는 마리아와 6촌관계로 언드라시의 할아버지가 마리아의 할아버지인 벨라 4세의 막내동생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교황으로부터 아들인 카를로 마르텔을 헝가리의 국왕으로 인정받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헝가리 내부에서는 언드라시를 국왕으로 선포했고 결국 언드라시가 언드라시 3세로 헝가리를 직접 통치했었습니다. 카를로 마르텔은 명목상 헝가리의 국왕이긴 했지만 헝가리를 통치하지 못했었으며 1295년 아버지보다도 먼저 사망했었습니다.
클레멘티나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클레멘티나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로마인의 왕이었던 루돌프 1세와 그의 아내인 호엔베르크의 게르트루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루돌프 1세는 로마인의 왕이 되고 난뒤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장악했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후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발판으로 성장해나가게됩니다. 루돌프 1세는 아마도 자신 가문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여러 동맹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래서 딸인 클레멘티나를 나폴리 국왕의 장남인 카를로 마르텔과 결혼시킨것일듯합니다.
클레멘티나의 부모는 아들인 카를로와 두 딸인 베아트리체와 클레멘티나를 얻었습니다만 둘다 일찍 사망합니다. 클레멘티나의 어머니는 클레멘티나를 낳다가 사망한것으로 추정되며, 클레멘티나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2년후에 사망합니다. 그렇기에 클레멘티나와 오빠 언니들은 모두 나폴리에서 할머니인 헝가리의 마리아 손에 컸다고 합니다.
클레멘티나의 오빠인 카를로는 결국 헝가리의 왕위를 얻어서 헝가리의 국왕 카롤리 1세가 됩니다. 물론 여전히 헝가리에는 대립국왕들이 존재했고 이때문에 나라를 평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했지만 결국 모두를 꺽고 헝가리의 왕위를 얻게 됩니다. 클레멘티나의 언니인 베아트리체는 알봉 백작령의 후계자인 "비엔누아의 도팽"이었던 장 2세와 결혼했습니다. 이 지역은 프랑스 남부 지역으로 원래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었지만 프랑스가 장악했으며, 첫번재 알봉 백작의 별명이었던 도팽이 이 지역의 지위로 굳어진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후에 프랑스의 왕위계승자의 칭호로도 쓰이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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