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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38) 아라곤의 후아나 : 후안 2세의 딸(세번째)

엘아라 2022. 4.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진짜 후아나 이야기는 별로 없고 배경 설명만 한가득입니다. =-=

 

아라곤의 인판타들...(38) 아라곤의 후아나 : 후안 2세의 딸(세번째)

 

 

아라곤의 후아나

나폴리의 왕비

Joanna of Aragon 

(Spanish: Juana, Italian: Giovanna)

( 16 June 1455 – 9 January 1517) 

 

이탈리아에서 "조바나"라는 이름으로알려지게 되는 후아나는 페르디난도 1세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아이는 딸인 조바나로 1479년 태어났으며 둘째는 아들인 카를로로 1480년 태어났습니다. 이중 카를로는 어린시절 병으로 사망했으며 조바나만이 성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후아나가 나폴리로 시집갔을때 나폴리 왕국의 상황은 이전의 상황에 비해서 달라지기 시작했었습니다. 페르디난도 1세 치세 후기가 되면서 나폴리 내에서 반란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긴장 상황은 후아나가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게 만들었습니다. 

 

1494년 후아나의 남편인 페르디난도 1세가 사망하고 페르디난도 1세의 장남이자 후아나의 의붓아들인 알폰소가 나폴리의 국왕이 됩니다. 후아나는 과부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슬픔의 왕비" la triste reyna라고 부르게 됩니다. 후아나는 의붓아들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나폴리의 알폰소 2세는 새어머니에게 고위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이것은 후아나가 아라곤의 인판타로 후아나의 아버지인 후안 2세는 비록 사망했지만 후아나의 오빠인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르디난도 2세는 카스티야의 여왕인 이사벨과 결혼했으며 둘은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군주들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나폴리의 알폰소 2세

 

후아나의 삶은 더욱더 복잡해지게 되는데 후아나의 남편인 페르디난도 1세가 죽은 시점에서 이후 50년 이상 진행되는 "이탈리아 전쟁"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전쟁의 시작의 중심에는 나폴리 왕국이 있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샤를 8세는 할머니인 마리 당주를 통해서 나폴리 왕국의 계승권리를 주장할수 있었으며 반나폴리편에 섰던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이 권리를 정식으로 승인해주면서 샤를 8세가 나폴리 왕국을 침공할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줬었습니다.  그리고 페르디난도 1세가 사망한후 샤를 8세는 바로 나폴리를 향해 다가오게 됩니다.

 

나폴리의 알폰소 2세는 나폴리내에서 인기가 없었으며 샤를 8세가 다가오자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아들인 페르디난도에게 양위를 하게 됩니다. 그가 나폴리를 떠나고 나폴리가 아들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길 바랬을 것인데 이때 알폰소 2세는 아들에게 후아나와 잘 지내라고 충고했었다고 합니다. 알폰소 2세는 나폴리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던 반면 그의 아들인 페르디난도 2세는 나폴리 인들의 사랑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비록 처음에는 샤를 8세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했었으며 페르디난도 2세는 의붓할머니인 후아나와 고모인 조바나를 데리고 떠났었습니다. 하지만 곧 페르디난도 2세는 다시 한번 세력을 규합했었으며 점차 나폴리의 여러지역을 다시 되찾게 됩니다.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2세

 

이런 상황에서 페르디난도 2세는 자신의 고모이자 후아나의 딸이었던 조바나와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정치적 원인이 컸을 것입니다. 조바나 역시 나폴리 왕국의 상속권리를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외삼촌인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의 유대를 강화할수 있었기 때문일것입니다. 게다가 페르디난도 2세는 조바나보다 9살정도 더 많았었습니다. 둘은 1496년 7월 결혼했지만 결혼 두달만인 1496년 9월 페르디난도 2세는 앓고 있던 병이 악화되어서 사망합니다. 

 

후아나는 사위이자 의붓손자인 페르디난도 2세가 죽은뒤 나폴리 왕위를 자신의 딸인 조바나나 아니면 오빠인 페르난도 2세가 이어받길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위는 조바나의 이복오빠이자 페르디난도 2세의 숙부였던 페데리코가 이어받게 됩니다. 페데리코는 후아나를 정적으로 여겼으며 이때문에 형이나 조카와 달리 새어머니인 후아나를 홀대하게 됩니다. 후아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지위를 사임하고 스스로 궁정을 떠났었습니다. 

 

아마도 후아나는 나폴리에서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으며 이것은 페데리코가 후아나를 무시할수 없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후아나는 다시 궁정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이번에는 페데리코의 왕비였던 이사벨라 드 발조와 마찰을 빚었으며 이것은 그녀가 페데리코와 더욱더 가까워질수 없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폴리의 페데리코

 

이와중에 프랑스에서는 샤를 8세가 죽고 루이 12세가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루이 12세는 다시 한번 나폴리 왕국을 손에 넣으려합니다. 결국 페데리코는 왕위를 프랑스 국왕에게 뺏기고 스스로 퇴위해야했었습니다. 후아나 역시 딸인 조바나를 데리고 나폴리를 떠나야했으며 오빠가 있는 아라곤으로 가게 됩니다. 야심 가득한 후아나의 오빠인 페르난도 2세는 나폴리 왕국을 프랑스에 뺏길수는 없었으며 결국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나폴리의 국왕이 됩니다. 

 

오빠가 나폴리의 국왕이 되면서 1508년 후아나는 딸인 조바나를 데리고 다시 나폴리로 돌아갔으며 나폴리에 정착했었습니다. 페르난도 2세는 여동생과 조카에게 매우 후하게 대접햇었으며 후아나는 나폴리에서 평온하게 살다가 사망했습니다.

 

후아나의 딸이었던 조바나는 페르디난도 2세와 결혼한뒤 다시 재혼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다고 열려져있었으며 그녀의 계승권리와 가족관계 때문에 유럽의 여러 왕가에서 흥미를 보였습니다만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었습니다. 조바나는 어머니와 함께 지냈었으며 어머니가 죽은  몇달뒤 사망했습니다.

 

나폴리의 조바나, 후아나의 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