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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40) 시칠리아의 콘스탄차 : 페데리코 2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22. 4.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사실 본인 이야기는 별로 없는데 배경설명이 산더미입니다.

...솔직히 저기 예루살렘, 안티오크,키프로스는 진짜 이해하기 너무 어렵더라구요..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40) 시칠리아의 콘스탄차 : 페데리코 2세의 딸 (두번째)

 

시칠리아의 콘스탄차

예루살렘과 키프로스의 왕비

아르메니아의 왕비

Costanza d'Aragona o di Sicilia 

(1305 – Cipro, 19 aprile 1344)

 

시칠리아로 돌아왔을때 콘스탄차는 20대 초반이었으며 아버지인 페데리코 2세는 딸의 재혼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1331년 콘스탄차는 두번째 결혼을 합니다.상대는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국왕이었던 레오 4세(레온 4세)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의 레오 4세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은 원래 비잔틴 제국에 속해있던 곳이었지만 비잔틴 제국과 갈등을 빚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11세기 아르메니아는 비잔틴 제국에서 독립했으며 특히 십자군 전쟁때 서유럽의 기사들이 성지로 가는 길에 식량등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으며 이때문에 십자군 전쟁이후 생긴 동방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가 강했었습니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아르메니아의 국왕 레온 4세는 1320년 아버지인 아르메니아의 국왕 오신이 사망한뒤 11살의 나이로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미성년자였기에 섭정이었던 코리코스의 오신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코리코스의 오신은 야망이 큰 인물로 정권을 장악했으며 아마도 더 나아가서 왕위에 대한 야망도 가졌을 것입니다. 오신 역시 레온 4세처럼 아르메니아의 여왕 이사벨의 후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신은 먼저 레온 4세의 계모이자 전 왕비였던 타란토의 잔과 결혼했습니다. (..가계도를 따져보면 잔과 콘스탄차는 사촌간이입니다. 잔의 아버지와 콘스탄차의 어머니가 남매간입니다.) 그리고 레온 4세에게 자신의 딸인 알리스와의 결혼을 강요했었습니다. 그리고 레오 4세의 고모인 이사벨라와 그녀의 아들을 살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레온 4세가 섭정인 오신에게 원한을 품게 만들었으며 그가 성인으로 성장한뒤 오신과 그의 주변인물들을 처단했었습니다. 레온 4세는 오신의 딸이었던 아내 알리스마저 살해하면서 그에 대한 원한을 드러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내가 죽은뒤 레온 4세는 콘스탄차와의 재혼을 선택했었습니다. 레오 4세는 서구적인 인물이었을뿐만 아니라 가톨릭교에 호의적이었기에 콘스탄차를 아내로 선택했지만 아르메니아의 사람들은 이런 레온 4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레온 4세의 씰, 레온 4세는 레온 5세로 넘버링 되기도 합니다.

 

콘스탄차는 결혼후 아르메니아에서 그다지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늘 아팠으며 임신을 했어도 매번 유산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341년 남편인 레오 4세가 암살당한뒤 다시 한번 과부가 됩니다.

 

콘스탄차는 두번째 남편이 죽은 2년뒤인 1343년 세번째 결혼을 합니다. 이 결혼 역시 정략결혼으로 상대는 키프로스의 장으로 장의 종조부는 콘스탄차의 첫번째 남편이었던 앙리 2세였습니다. 장은 콘스탄차보다 20살이나 어렸습니다. 콘스탄차는 재혼한 1년뒤인 1344년 자녀없이 사망햇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