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화요일 : 에스파냐

아라곤의 인판타들...(36) 아라곤의 후아나 : 후안 2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22. 3.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아라곤의 인판타들 마지막쯤 되는것같은데....문제가 여기도 족보 관계가 엄청납니다.

남편이 나폴리 국왕이라서 아무생각없었는데 보니까 나폴리 왕국 이야기도 해야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엉엉엉...--;;;;

 

아라곤의 인판타들...(36) 아라곤의 후아나 : 후안 2세의 딸 (첫번째)

 

아라곤의 후아나

나폴리의 왕비

Joanna of Aragon 

(Spanish: Juana, Italian: Giovanna)

( 16 June 1455 – 9 January 1517) 

아라곤 왕가의 문장

 

아라곤의 후아나는 나바라의 국왕이자 후에 아라곤의 국왕이 되는 후안 2세와 그의 두번재 아내인 후아나 엔리케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아나의 아버지인 후안 2세는 카스티야의 인판테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인 페르난도가 아라곤의 국왕이 되면서 역시 아라곤의 인판테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형인 알폰소가 있었고 형인 알폰소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아라곤의 알폰소 5세가 됩니다. 카스티야에서 "아라곤의 인판테"라고 불렸던 후아나의 아버지와 백부 숙부들은 모두 야망이 큰 인물들이었으며, 후아나의 아버지인 후안은 나바라의 왕위계승자인 블란카와 결혼했었으며 블란카가 나바라의 여왕이 되면서 아내의 권리를 통해서 나바라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후안은 첫번재 아내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1441년 나바라의 블란카 1세가 죽은뒤 나바라에서 왕위계승에 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블란카가 죽었기에 아내의 권리로 국왕이 된 후안은 정통성이 없었으며 왕위는 아들인 카를로스에게 물려줘야했었습니다. 하지만 후안은 나바라의 왕위를 내놓길 거부했었으며 결국 아들과 내전을 해서 승리를 거두면서 나바라의 왕위를 계속해서 이어가게 됩니다. 특히 아들인 카를로스나 딸인 블란카가 왕위를 요구했을때 철저히 이들을 억눌렀고 결국 이들 모두 후안보다 일찍 사망했고 막내딸인 레오노르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인물이었기에 후안은 나바라의 왕위를 굳건히 지킬수가 있었습니다.

이후 1458년 형인 알폰소 5세가 적자없이 사망하자 형의 뒤를 이어서 아라곤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아라곤의 후안 2세

 

후아나의 어머니인 후아나 엔리케스는 파드리케 엔리케스와 그의 아내인 카사로비오스 델 몬테의 상속녀였던 마리아나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아나 엔리케스의 아버지인 파드리케 엔리케스는 카스티야의 고위지위였던 카스티야의 제독Almirante de Castilla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파드리케 엔리케스의 아버지인 알론소 엔리케스(또는 알폰소 엔리케스) 역시 카스티야의 제독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알론소 엔리케스의 아버지인 파드리케 알폰소는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11세와 그의 정부였던 레오노르 데 구스만의 아들이자 후에 카스티야의 국왕이 되는 엔리케 2세의 쌍둥이 형제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관계로 후아나 엔리케스는 남편인 후안 2세처럼 알폰소 11세의 증손이었습니다. 후아나 엔리케스는 1431년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어머니의 영지인 카사로비오스 델 몬테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후아나 엔리케스의 고조할머니인 레오노르 데 구스만과 증조할아버지인 파드리케 알폰소가 헤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레오노르 데 구스만은 알폰소 11세가 죽은뒤 알폰소 11세의 왕비였던 포르투갈의 마리아에 의해서 처형당했습니다.

 

후안 2세와 후아나 엔리케스의 결혼은 완전히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으로 후안 2세는 아내가 죽은뒤 자신을 지지해줄 강력한 귀족 가문을 찾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후아나 엔리케스가 그의 신붓감으로 선택된것이었습니다. 둘은 1443년 약혼했지만 정치적 문제로 결혼은 미뤄지다가 1447년 결혼식이 거행됩니다. 

 

후아나 엔리케스는 자신의 남편처럼 야심이 많은 인물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여러가지 정치적 행동을 했었기에 더욱더 그랬는데 이를테면 남편에게 전처의 아들이었던 나바라의 카를로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왕위를 유지하려했다는 음모에 대한 증거를 남편에게 제시했고 이것은 후안 2세와 카를로스 사이를 더욱더 멀어지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카를로스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자 후안 2세는 후아나 엔리케스의 아들인 페르난도를 아라곤의 왕위계승자로 바로 선포했었기에 후아나 엔리케스가 야심이 많았다는 평판은 더욱더 널리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후아나 엔리케스

 

후아나 엔리케스는 죽기 직전까지 아들인 페르난도를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결혼시켜서 페르난도가 카스티야의 국왕이 되길 바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아나 엔리케스가 죽은 다음해에 페르난도는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결혼했고 둘의 결혼으로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합쳐지면서 현재의 에스파냐가 만들어지게 된것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