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복잡한 카스티야 족보 관계를 따지다가 보니 한편이 지나갔네요.
사실 저기는 포르투갈도 엮여서 완전 난리도 아닌데 말압니다.
진짜 카스티야-아라곤-포르투갈의 혼인 관계를 보면 족보가 꼬여도 너무 꼬여서 막 헷갈려요 =-=
아라곤의 인판타들...(34) 아라곤의 마리아 : 페르난도 1세의 딸(두번째)
아라곤의 마리아
카스티야의 왕비
Maria of Aragon
(24 February 1403–18 February 1445)
후안 2세와 마리아
마리아는 아버지가 아라곤의 국왕이 되기전까지 카스티야의 인판타로 카스티야에서 성장했었습니다. 마리아는 아마도 부족한것 하나없이 지냈을 것인데 마리아의 아버지는 카스티야의 섭정으로 카스티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으며 1412년에는 아라곤의 국왕이 되어서 아라곤을 통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버지와 형제 자매들은 매우 야망이 컸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신들의 가족의 영향력을 키우길 원했었으며 특히 아버지가 아라곤의 국왕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들이 모두 카스티야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특히 이런 경향이 더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딸들인 마리아와 레오노르 역시 이런 야망에 동참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1420년 아버지와 오빠인 알폰소 5세의 뜻에 따라서 사촌이었던 카스티야의 국왕 후안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마리아가 후안 2세와 결혼하면서, 카스티야 내에서의 "아라곤의 인판테"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마리아는 카스티야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형제들인 "아라곤의 인판테"들의 이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했었습니다. 심지어 마리아는 형제들의 이익을 위해서 남편인 후안 2세의 뜻을 반대하거나 심지어 그의 권력에 도전하는 일을 서슴치 않고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후안 2세는 아내에 대해서 점차 더 냉담하게 변했었습니다.
마리아는 후안 2세와의 사이에서 네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중 유일하게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는 아들이자 남편의 후계자가 되는 엔리케 4세였습니다.
마리아는 1445년 사망했으며, 후안 2세는 아내가 죽은뒤 포르투갈의 이사벨 (포르투갈의 주앙 1세의 손녀로, 주앙 1세의 부인은 랭카스터의 필리파로 후안 2세의 어머니인 랭카스터의 캐서린과 이복자매간입니다. =-=;;;; )과 재혼했으며 이 재혼에서 "가톨릭 공동군주"가 되는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태어났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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