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엉엉엉.........배경설명을 많이 해야해서 읽을 것이 너무 많아요 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37) 아라곤의 후아나 : 후안 2세의 딸(두번째)
아라곤의 후아나
나폴리의 왕비
Joanna of Aragon
(Spanish: Juana, Italian: Giovanna)
( 16 June 1455 – 9 January 1517)
후아나가 3살이었던 1458년 후아나의 아버지인 후안 2세는 아라곤의 국왕이 되었으며 후아나는 아라곤의 인판타로 당대 왕족 여성들의 교육을 받고 자라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아나의 가문 사람들은 모두가 야심이 많은 인물들이었으며 후아나 역시 이런 가족들과 함께 지냈었기에 역시 정치적인 면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스스로도 정략결혼을 해야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후아나는 21살이었던 1476년 50살이 넘은 나폴리의 국왕이었던 페르디난도 1세(또는 페란테 1세)와 결혼하는 협정이 체결됩니다. 둘은 사촌간이었는데 페르디난도 1세는 후아나의 백부인 알폰소 5세의 아들이었는데 페르디난도 1세는 자신의 나폴리 왕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 아라곤과 시칠리아를 통치하던 숙부의 지지를 얻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여겼기에 후아나와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페르디난도는 두번째 결혼이었고 전처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나폴리의 국왕 페르디난도 1세는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5세의 아들이었지만 적자가 아니라 알폰소 5세의 정부였던 지랄도나 카를리노의 아들이었습니다. 알폰소 5세는 복잡한 나폴리 왕위계승문제에 연관되었는데 그는 앙주 가문출신의 마지막 나폴리 군주였던 조바나 2세에 의해서 왕위계승자후보로 지정되었고 결국 왕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때쯤 나폴리 출신의 지랄도나 카를리노를 만나서 아들이니 페르디난도를 얻었으리라 추측합니다. 알폰소 5세는 적자가 없었기에 아들인 페르디난도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그는 아들이 아라곤과 시칠리아의 왕위를 얻을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부가적으로 딸려온 왕위나 다름없던 나폴리 왕국의 왕위는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결정했었습니다. 알폰소 5세는 아들을 나폴리왕국에서 확고한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나폴리의 공식 왕위계승자 칭호를 부여하고, 나폴리 유력 귀족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시키는 등의 노력했고 결국 페르디난도는 145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나폴리의 국왕이 됩니다.
페르디난도 1세는 30대에 왕위에 올랐으며 어느정도 기반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가 사생아라는 사실에 많은 귀족들이 페르디난도가 아니라 그의 숙부인 아라곤의 국왕 후안 2세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페르디난도는 나약한 국왕이 아니었는데 그는 가문내 다른 사람들처럼 정치적으로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줬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일들을 했는데 이것은 나폴리의 번영을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또 외교적으로도 매우 뛰어났고 이탈리아내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잘 조율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자신에게 반항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하므로써 그의 권위에 도전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랬기에 페르디난도 1세는 자신의 자녀들을 정략결혼 시켰으며, 아내인 클레르몽의 이사벨라가 1465년 사망한뒤 결국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촌이었던 후아나를 두번째 아내로 맞게 됩니다. 아마 페르디난도 1세는 아내가 죽은뒤 여전히 자신에게 위협이 될수 있는 숙부와 우호적이 되어야한다고 여겼을 것이며 이때문에 숙부의 미혼이었던 딸인 후아나와의 결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페르디난도 1세는 이탈리아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군주였으며, 후아나는 아라곤과 시칠리아 그리고 나바라를 통치하던 후안 2세의 딸이었기에 둘의 결혼은 매우 정치적으로 중요했으며 호화롭게 열리게 됩니다. 게다가 이 결혼은 나폴리의 왕위를 주장할수 있는 인물중 한명이었던 후안 2세가 페르디난도 1세를 국왕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에 더욱더 중요한 결혼이었을 것입니다. 후안 2세는 딸에게 엄청난 지참금을 줬으며, 페르디난도 1세 역시 후아나에게 나폴리 왕국내 여러 영지를 부여해주면서 왕비로써의 중요성을 돋보이게 해줬었습니다. 결혼 협정이 체결된뒤 후아나는 이제 정식 나폴리 왕비로 인정받았으며 이제 나폴리로 가서 결혼식할 날만남게 됩니다. 1477년 페르디난도 1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칼라브리아 공작 알폰소가 새어머니가 될 후아나를 데릴러 아라곤으로 갔으며, 1477년 9월 후아나는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1세와 공식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 결혼미사를 주제한 사람은 바로 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되는 로드리고 드 보르자였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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