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 엘입니다.
사실 지난편에 쿠데타를 쓸려고 했는데 배경 설명 쓰다보니까 글이 길어졌네요.
계속해서 그냥 귀족들이랑 갈등상황이라 왠지 길게 글을 늘이는 느낌이랄까 그런 생각이긴 한데 참고 자료가 뭐랄까 어찌나 정치적으로 자세하게 적어놨는지 왠지 쓰고 싶더랩니다. =-=
(물론 날림으로 읽은건 안비밀..ㅠ.ㅠ)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20) 스웨덴의 왕비 : 쿠데타 시도
왕비의 보석 사건은 일단 무마되긴 했지만 이것은 로비사 울리카와 궁정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로비사 울리카의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마저 동생이 모욕당했다고 여길 정도였기에 아마 로비사 울리카 본인은 더욱더 분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들의 교육문제, 국왕의 결정권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심하게 간섭당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보석사건까지 겹쳐지면서 결국 이들은 폭발하기에 이르게됩니다.
로비사 울리카와 궁정파 사람들은 귀족들과 의회가 도를 넘었다고 여겼으며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1756년 6월 21일 국왕 부부와 궁정파 사람들은 한밤중에 극장에 모였으며 준비했던 일을 실행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들이 준비한 계획은 여러가지였는데 먼저 도시 이곳저곳에 방화를 해서 스톡홀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게 했으며 이들을 선동해서 국왕이 핍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국왕이 등장해서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약고와 무기고를 습격해서 무기와 화약을 확보하고 다리등을 차단해서 교통과 정보를 장악하고 의회등 중요 정치 기관을 장악하고 정적들을 체포하는 등의 계획 역시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핵심 인물이었던 에릭 브라헤 등은 결행해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실행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며 에릭 브라헤는 이를 말릴수 없다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 쿠데타는 실행할수 없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정보가 새어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사실 이전에 이미 쿠데타에 가담한 사람들이 어설프게 정보를 발설했었는데 이를테면 술집에서 쿠데타에 대해서 떠들어 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를 하기 직전 쿠데타에 가담하기로 했던 한 군인이 자신이 신뢰하던 하타르나중 한명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으며, 결국 하타르나들도 이 정보를 인지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 정보를 무시하지 않고 도시의 순찰을 강화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국왕 부부와 궁정파들은 결국 21일 쿠데타 실행을 미룰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22일 밤 이들은 다시 한번 쿠데타를 시도하려했지만 21일과 달리 충분한 사람들이 모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실 지도부의 우유부단함이 큰 역할을 했었습니다. 이미 정보가 알려져있었기에 쿠데타를 하려면 빠른시간에 했어야했는데 지도부들이 주저하면서 가담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게다가 쿠데타의 중심인물이었던 국왕 역시 적극적이지 않았었습니다. 사실 아돌프 프레드릭은 이때 병을 앓았었으며 아내의 계획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알지는 못했었다고 추정됩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그가 적극적으로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으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국왕이 중요한 요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쿠데타 지도자들과 왕비도 국왕에게 나서라고 했지만 국왕은 결국 나서지 않았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다시 한번 더 쿠데타를 시도하려했지만 이제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내각에서는 재빨리 쿠데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왕비와 왕비 주변 인물들을 모두 체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쿠데타 실행인물들이었던 요한 푸케와 마그누스 스톨뵈르드가 체포당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측근들을 프로이센으로 서둘러 피신시키려했었지만 핵심 인물중 한명이었던 에릭 브라헤와 구스타프 야곱 호른은 체포당했으며, 요한 루드빅 호르드 같은 인물만이 겨우 프로이센으로 피신할수 있었습니다.
국왕 부부와 체포된 사람들의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든 이들을 구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에릭 브라헤의 장인은 뇌물을 써서 사위를 구하려했었으며 국왕 부부 역시 비굴하게 내각에 이들을 풀어달라고 호소해야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호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체포당한 중심인물들은 처형당했으며 도망친 이들에게도 사형선고가 내려졌었습니다.
내각에서는 당연히 왕비가 배후에 있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조사하면서 왕비가 관련된 것은 분명해보였습니다. 하지만 국왕의 경우는 좀 애매했는데 국왕은 지속적으로 심하게 아팠으며 또 쿠데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려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내각에서는 국왕에 대해서는 일단 관련성을 배제했으며 왕비의 책임으로 여기게 됩니다. 왕비가 쿠데타의 배후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왕비를 스웨덴에서 추방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아니라면 적어도 왕비를 국왕과 헤어지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에서 안전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로비사 울리카가 바로 프로이센 공주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때 7년 전쟁 직전 상황에서 로비사 울리카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포메른 지방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했던 프로이센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할것을 우려했었습니다.
결국 내각에서는 국왕과 왕비가 쿠데타에 관여되었다는 사실을 공표하지는 않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는 문서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물론 기록은 봉인되었지만 만약 로비사 울리카나 국왕이 다시 한번 쿠데타를 시도한다면 이 모든 것을 공개해서 국왕을 폐위하고 왕비를 추방하기로 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자신에게 충성스러웠던 인물이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했었습니다. 하지만 로비사 울리카는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만 로비사 울리카는 이제 스웨덴에서 더이상 절대주의적 왕권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실패한 쿠데타 시도를 통해서 스웨덴에서 자신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로비사 울리카의 접근 방식은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에서 왕비로 계속에서 정치에 관여할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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