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8) 스웨덴의 왕비 : 정치적 갈등의 심화

엘아라 2022. 1.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음냐 글이 잘 안써지네요 엉엉엉..ㅠ.ㅠ

역시 책을 덜 읽고 글을 쓰면 안됩니다. =0- 글도 아는것이 있어야 쓰는것인데 말입니다. ㅠ.ㅠ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8) 스웨덴의 왕비 : 정치적 갈등의 심화

 

아돌프 프레드릭이 국왕이 된 직후 스톡홀름에는 큰 화재가 발생합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이 화재에 대해서 걱정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음모가 연결이 된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워합니다. 특히 로비사 울리카가 가장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러시아가 이에 관여된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워했었습니다. 이런 의심은 아마도 오래도록 러시아와 그와 연결된 스웨덴 내의 정치 세력에 대해서 견제를 했었고, 자신과 남편에게 불만이 많은 러시아가 왕위계승을 방해하려한다고 생각했던 것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친하게 지냈던 뫼소르나들은 1751년 이후 정권을 얻지 못했고 하타르나들이 정권을 얻게 됩니다. 사실 이전부터 로비사 울리카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프랑스에 대한 의존도를 늘이고 있었으며, 이런 정치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동맹을 강화하길 원했던 뫼소르나들의 세력은 약화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타르나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로비사 울리카는 이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로비사 울리카가 절대주의를 원했었고 국왕부부는 헌법을 개정해서 왕권을 강화하려했었지만, 하타르나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권력을 뺏는 이런 국왕부부의 행위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 않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대관식때 모습

 

하타르나와 로비사 울리카가 결별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테신과의 관게가 악화된점에 있습니다. 테신은 오래도록 로비사 울리카를 열렬히 지지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권력에 가까워지면서 그와 로비사 울리카 간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게 됩니다. 특히 로비사 울리카는 아들의 약혼 문제와 국왕의 즉위때 군대를 동원해서 의회를 장악하고 헌법을 바꾸려했던 상황에서 테신이 비협조적이었던 것에 대해서 불만이 가득했었습니다. 당연히 로비사 울리카 입장에서는 테신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반면 테신의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왕비를 지지했었고 로비사 울리카와 국왕이 지금까지 스웨덴에 자리잡게 도와줬음에도 로비사 울리카가 점차 더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런 갈등은 결국 테신이 정부의 지위를 사임하겠다는 결과로 나옵니다. 물론 테신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중요했기에 국왕 부부는 그를 말렸었고 잠시 지위를 유지했었지만 결국 테신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후 궁정에서 은퇴하고 정부의 지위에서 물러났습니다. 이것은 로비사 울리카와 하타르나 사이를 연결하던 가장 중요한 인물이 사라진것을 의미했으며 의회와 국왕 사이의 마찰을 조정할수 있는 사람이 더 없어지게 된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재미난 점은 로비사 울리카의 아들인 구스타브 3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테신이 물러난 이유가 그가 왕비를 사모했지만 왕비가 그에게 차갑게 대하자 실망스러워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테신과 왕비의 사이가 나빠진것은 확실히 테신의 행동에 대해서 왕비가 불만이 많았고 이에 대해서 테신을 냉대했기 때문이었기에 어쩌면 구스타브 3세가 저렇게 생각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칼 구스타프 테신

 

로비사 울리카는 테신 뿐만 아니라 하타르나들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로비사 울리카가 가장 신임했던 리벤 역시 프레드릭 1세가 죽은뒤 의회를 압박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하자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했었지만 테신이 발을 빼자 그 역시 은근슬쩍 발을 뺐습니다. 로비사 울리카가 생각하기에 그가 발을 빼면서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상황은 주변의 하타르나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한드 헨드릭 폰 리벤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 내 정치 세력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동맹이었던 프랑스의 대사와도 갈등을 빚게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아들과 덴마크 공주간의 약혼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약혼을 깨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덴마크와 스웨덴의 동맹은 사실 프랑스에서도 지지하는 것이었고, 테신이 왕비의 뜻을 어기면서까지도 약혼을 추진했던 큰 이유중 하나이기도 했었습니다. 프랑스 역시 북방에서의 안정적 정치 상황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간의 갈등이 시작된다면 러시아가 여기 개입할 가능성이 있었고 이것은 프랑스가 원치 않는 상황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로비사 울리카는 이런 프랑스의 정책이 주 스웨덴 프랑스 대사의 개인적 생각이라고 여겼으며 프랑스 대사를 적대적으로 여기게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와 프랑스 대사 간의 갈등은 스웨덴과 프랑스간의 갈등으로 번지게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자신의 뜻이 프랑스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에게 다시 한번 프랑스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프랑스에서는 왕비가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역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중재를 부탁했고 프리드리히 2세는 중간에서 동생의 외교적 안목에 대해서 한탄하기도 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로비사 울리카의 오빠, 프리드리히 2세는 여동생을 위해서 여러 세력과 중재 역할을 하거나 외교적으로 여동생을 도와주거나 충고해주기도 했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실망스러운 정치 상황이 자신의 세력이 부족해서 였다고 생각합니다. 하타르나들은 자신과 잘 지내긴했지만 국왕에 충성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국왕에게만 충성하는 인물들을 가까이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국왕부부에게만 충성할만한 사람들을 가까이 했으며 이들은 이제 "궁정파Hovpartiet(호브파티에트)"를 이루었으며 국왕 부부의 정치적 기반이 되게 됩니다. 

 

칼 구스타프 뢰벤옐름,, 하타르나중에서 국왕 부부에게만 충성하는 인물들을 "궁정파"라고 불렀는데 뢰벤옐름 역시 이런 인물중 하나였습니다.

 

로비사 울리카와 아돌프 프레드릭은 대관식이야말로 국왕의 권위를 강화할 중요한 계기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즉위식을 통해서 국왕의 권위를 세우려했습니다. 화려한 예식과 장엄한 음악 그리고 대관식 기념행사를 통해서 국왕이 아무런 힘이 없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비사 울리카가 남편과 함께 대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대관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스웨덴의 정치에서 로비사 울리카의 존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대관식 드레스와 로비사 울리카의 옥좌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