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뭐랄까 글이 진짜 집중이 안되네요.ㅠ.ㅠ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7) 스웨덴의 왕비 : 정치적 갈등의 시작
로비사 울리카와 그 주변 사람들은 정치적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1748년 국왕 프레드릭 1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국정을 운영할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로비사 울리카의 남편인 아돌프 프레드릭이 본격적으로 국정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은 아돌프 프레드릭과 로비사 울리카 주변 인물들이 어느정도 보상을 받을수 있는 계기가 되는데 특히 로비사 울리카가 신임했던 테신이 총리가 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테신은 로비사 울리카와 갈등을 빚기 시작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일이 덴마크 공주와 로비사 울리카의 장남인 구스타브 아돌프의 약혼 문제였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며느리감으로 자신의 조카들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테신이 자신의 뜻대로 덴마크와의 동맹을 위해서 정략결혼을 추진한 것을 용납할수 없었으며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으며 테신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하는 원인이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프레드릭 1세가 갑자기 위독해지자 남편이 왕위에 오를 날이 머지 않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로비사 울리카는 남편이 국왕으로 즉위하는것과 동시에 국왕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일을 하려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쿠데타 시도나 다름없었는데 이 일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프레드릭 1세의 건강이 어느정도 괜찮아졋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도에 대해서 로비사 울리카의 시녀가 주변의 여러나라에 정보를 흘렸고 이것은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가 여동생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것을 충고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751년 4월 국왕 프레드릭 1세의 건강이 악화됩니다. 국왕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자 로비사 울리카는 남편인 아돌프 프레드릭에게 즉위하는 상황이야말로 의회에 뺏긴 국왕의 권력을 되찾을 기회라고 이야기합니다. 프레드릭 1세는 의회에 권력을 완전히 넘겨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대로 즉위한다면 로비사 울리카의 남편 역시 프레드릭 1세와 마찬가지로 허수아비 국왕이 될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즉위식을 할때 군대를 동원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주장을 지지했던 인물은 로비사 울리카가 당시 가장 신임했던 인물이었던 한스 헨드릭 폰 리벤이었습니다. 그는 총리였던 테신에게 군대를 동원할수 있도록 요청해야한다고 생각했으며 로비사 울리카 역시 테신에게 이를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테신은 자신의 처소로 물러나서 쉬고 있었기에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제안을 거절하게 됩니다. 그후 국왕이 위독했고 국왕 곁에서 로비사 울리카 부부가 머물러야했기에 바로 행동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데 리벤은 테신이 군대 동원을 거절한것에 대해서 더이상 승산이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로비사 울리카가 계속해서 군대를 동원하자는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1751년 4월 5일 프레드릭 1세가 사망합니다. 국왕이 죽은뒤 아돌프 프레드릭은 의회의 승인에 따라서 국왕이 되었으며 로비사 울리카는 이제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로비사 울리카가 원했던 어떤 것도 실행할수는 없었습니다. 아돌프 프레드릭은 선왕이었던 프레드릭 1세처럼 자신의 권한을 최소로 하고 왕권보다 강한 의회 권력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뜻을 이룰수는 없었지만 의회 역시 로비사 울리카의 시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국왕부부를 견제하는 원인이 됩니다. 새 국왕이 즉위했지만 의회와 국왕과의 긴장은 심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로비사 울리카의 이전 지지세력이었던 하타르나는 더이상 로비사 울리카를 지지하지 않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