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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5) 스웨덴의 왕태자비 : 초기 정치적 활동

엘아라 2022. 1.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한일이 너무 많아요...엉엉엉...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5) 스웨덴의 왕태자비 : 초기 정치적 활동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으로 오기전 스웨덴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배웠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스웨덴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품게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의 정치 상황에서 가장 불만을 품은 것은 스웨덴 내의 정당들이 국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고 이것이 스웨덴을 약화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비사 울리카는 이런 폐단을 해결하고 강력한 스웨덴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스웨덴에서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뜻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로비사 울리카, 오로라로 표현된 모습.

 

로비사 울리카는 기존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인 소뫼르나보다 하타르나에 더 가깝게 여기게 됩니다. 비록 이 소뫼르나들이 로비사 울리카의 남편을 왕위계승자로 만들었으며 로비사 울리카를 왕위계승자 부인으로 만들었습니다만 로비사 울리카의 생각으로는 왕권을 강화하는데 이들이 더욱더 큰 걸림돌이라고 여겼습니다. 소뫼르나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고 이들은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더욱더 중요했었기에 당연히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던 로비사 울리카는 이들이 큰 정적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로비사 울리카는 러시아의 간섭이 스웨덴의 힘을 약화시키는 원인중 하나라고 여겼으며, 프랑스와의 관계를 더 선호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러시아를 지지했던 소뫼르나들에 대해서 더욱더 부정적으로 봤을 것입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으로 와서 왕권 강화를 위해 정치적 활동을 시작합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일단 정권을 잡지 못한 하타르나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프랑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또 정권을 잡기 위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만한 인물들이기도 했었습니다. 이것은 로비사 울리카의 목적에 맞는 사람들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로비사 울리카를 왕위계승자의 부인으로 지지했었던 칼 구스타프 테신이 바로 이 하타르나의 지도자중 한명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하타르나쪽 사람들로 채우게됩니다. 이를테면 그녀의 시녀로는 테신의 아내였던 울라 테신(울리카 스파레)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로비사 울리카의 측근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에서 활동하는데 평판을 유지할수 있게 만든 중요한 사람들이기도 했었습니다. 

 

울라 테신, 울리카 스파레, 칼 구스타프 테신의 부인, 로비사 울리카의 시녀

 

로비사 울리카는 정치적 활동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남편인 아돌프 프레드릭을 중립적 입장에서 하타르나쪽을 지지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아돌프 프레드릭은 스웨덴의 국왕이 될 예정이었는데 그가 한 정당, 특히 하타르나를 지지한다는 것은 그가 즉위한뒤 스웨덴 내의 정책이 바뀔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정치 활동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는 바로 칼 구스타프 테신이었습니다. 테신은 로비사 울리카와 매우 잘 맞는 관계가 되었으며 이들은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더욱더 좋은 관계가 됩니다. 테신은 로비사 울리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여흥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로비사 울리카 역시 테신을 좋은 관계로 유지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테신과 로비사 울리카는 연인관계라는 소문도 돌기도 했었다고 합니다만 둘은 정치적 관계로 묶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절대 왕권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였으미 이것은 신뢰할만한 신하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었습니다. 그리고 테신같이 능력있는 인물이 그녀를 돕는 것은 중요한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칼 구스타프 테신

 

로비사 울리카와 프레드릭은 당연히 자신들의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댓가를 줘야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강력한 권리를 행사할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줄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주들은 이런 이들에게 강력한 명예를 수여했습니다. 바로 훈장이었습니다. 오르드레 드 라모니(Ordre de l'Harmonie조화의 훈장 )을 만들었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수여한 훈장이었습니다. 이런 훈장의 의미는 왕가의 일원이나 왕가의 중요한 인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으로 중요한 명예였으며 이것은 절대 왕권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이 훈장을 주변의 측근들에게 주면서 그들이 자신의 뜻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길 바랬을 것입니다.

 

오르드레 드 라모니의 배지와 리본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에서 입지를 굳힐수 있었던 것은 바로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은 것이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결혼한 다음해 바로 임신했으며 1746년 1월 아들 구스타브를 낳았습니다. 스웨덴 왕가에서는 칼 11세의 막내아들이 1686년 태어난 이래 남성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았었으며 구스타브는 60년만에 태어난 스웨덴 왕가의 왕위계승자였습니다. 이것은 만성적으로 왕위계승자 문제에 시달리던 스웨덴에 중요한 일이었으며 로비사 울리카는 아들을 낳으므로써 정치적 입지를 더욱더 확고히 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로비사 울리카는 아들을 둘을 더 낳았으며 세명의 아들 모두가 성인으로성장했기에 로비사 울리카의 지위는 더욱더 확고해질수 있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세아들들, 구스타브, 칼, 프레데릭 아돌프

 

이런 상황은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 국내의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멀리하고 친정인 프로이센과의 동맹을 강화하려했었습니다. 물론 옐리자베타 여제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로비사 울리카의 뜻대로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수는 없었습니다만 외교관계에 대해서 어느정도 입지를 확보할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1746년 가을에 열린 의회에서 로비사 울리카가 지지하던 하타르나가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확보한 정치적 영향력은 어느정도 인정받을수 있었습니다. 

 

이런식으로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에 온 초기부터 정치에 관여했으며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로비사 울리카가 점차 더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