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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4) 스웨덴의 정치 상황 : 자유주의시기

엘아라 2022. 1.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엉엉엉..진짜 이시기 스웨덴은 정치 상황이 너무 복잡해요 ㅠ.ㅠ

특히 그눔의 모자당들...ㅠ.ㅠ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4) 스웨덴의 정치 상황 : 자유주의 시기

 

18세기초 스웨덴의 정치 상황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매우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이 당시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왕권의 최고에 이른 절대왕정을 추구하던 시기였었습니다만, 스웨덴은 그와 반대로 의회정치가 더 활발해지는 시기였습니다. 이것은 스웨덴의 대외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최고 전성기는 바로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시기였습니다. 그의 시기에 스웨덴의 국력은 최고였으며 이후 유럽의 강국으로 유럽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었습니다. 이후 스웨덴과 스웨덴의 국왕들은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와 같은 군인 국왕이 큰 지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칼 12세 시기가 되면서 스웨덴의 상황은 점차 더 바뀌게 됩니다. 칼 12세는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와 같은 군인군주였으며 국민들에게 역시 인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대북방전쟁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왕권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바로 칼 12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었습니다. 칼 12세가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겼는데 이 공백을 메꾸는 인물은 칼 12세의 후계자가 아닌 바로 의회와 귀족들이었습니다. 

 

스웨덴의 칼 12세

 

당시 스웨덴의 왕위 계승 후보자들은 여러명이 있었는데 그중 유력한 인물은 바로 칼 12세의 조카였던 홀슈타인-고토로프의 카를 프리드리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헤드빅 소피아는 칼 12세의 누나였으며 오래도록 칼 12세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인물이었습니다. 헤드빅 소피아는 칼 12세보다 미리죽었지만 그녀의 유일한 아들인 카를 프리드리히가 있었으며 칼 12세의 할머니였던 헤드빅 엘레오노라 왕비는 카를 프리드리히를 왕위계승자로 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드빅 엘레오노라 왕비 역시 칼 12세보다 미리 사망했으며, 이 때문에 칼 12세가 죽었을때 카를 프리드리히를 지지하는 인물들도 있었지만, 카를 프리드리히의 이모였던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지지하는 인물들 역시 존재합니다. 특히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국왕에 대한 결정권을 의회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리고 의회는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왕위에 올려주었고 대신 국왕이 가지고 있던 많은 권력을 의회와 귀족들에게로 이양하게 됩니다. 사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과 함께 공동 국왕이 되길 바랬었습니다만 의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었습니다. 이후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의 정책에 대해서 의회가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결국 여왕은 남편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왕비가 되었으며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남편이었던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가 스웨덴의 프레데릭 1세로 즉위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의회와 귀족들의 권력이 더욱더 강력해지는 원인이 되었으며 프레데릭은 더욱더 귀족들의 뜻을 따르는 상황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권력이 의회와 귀족들에게 넘어갔던 시기를 스웨덴에서는 "자유주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스웨덴의 프레데릭 1세와 울리카 엘레오노라 왕비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으로 시집갈 무렵 스웨덴의 국왕은 내각,의회 그리고 4개의 신분(귀족,사제,시민,농민)의 연합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극왕은 각각 내각,의회, 그리고 4개 신분과 각각 대화를 해야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왕을 압박했었으며 국왕 역시 이들의 말을 따를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각각의 이들이 점차 자신들의 이익을 더 추구하면서 스웨덴의 정치 상황은 더욱더 혼란해지는 원인이 됩니다. 

 

당시 스웨덴은 크게 두개의 정당으로 나뉘어져있었습니다. 한쪽은 하타르나 hattarna 로 불렸으며 다른쪽은 뫼소르나mössorna 로 불렸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각각 챙이 있는 모자와 챙이 없는 모자의 이름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챙이 있는 모자로부터 이름이 나온쪽이 Hattpartiet로 이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 하타르나라고 불렸고, 챙이 없는 모자로부터 이름이 나온쪽이  Mösspartiet로 이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 뫼소르나라고 불렸습니다.(그래서 두 당 이름 모두가 한국어로 번역하면 모자당..ㅠ.ㅠ 에잇.) 

 

이들 두 정당은 자유주의시기의 특징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뫼소르나는 1741년 이전까지는 외교적으로 영국에 의존했었으며 1741년 이후에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반면 하타르나는 기본적으로 외교적으로 프랑스에 더 의존하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타르나는 1730년대 후반에 정권을 잡게 되는데, 이들은 프랑스와의 관계 때문에 결국 1741년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했지만 결국 러시아에 패배하면서 다시 권력을 뫼소르나에게 뺏기게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뫼소르나는 러시아의 눈치를 보면서 아돌프 프레드릭을 왕위계승자로 선택했었으며, 역시 로비사 울리카를 왕위계승자의 부인으로 맞게 했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