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쓰다보니 뭐랄까 이 복잡한 정치 상황을 계속 설명해야하더라구요.
그래도 뭐랄까 로비사 울리카가 결혼하는 과정은 그래도 써야하니까 쓰는데 음냐 이렇게 쓰다가 보면 이번달 내내써도 다 못쓸듯해요 ㅠ.ㅠ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12) 스웨덴과의 혼담과 결혼
루이제 울리케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인 아돌프 프레드릭과의 혼담은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이 이루어진것이었습니다. 사실 옐리자베타 여제는 조카의 신붓감으로 영국의 조지 2세의 딸들중 한명을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후계자를 얻어서 나라를 안정시켜야했던 옐리자베타 여제는 빨리 혼담을 성사시킬수 있는 사람을 다시 찾게 됩니다. 이때 여제가 고려한 인물들중 하나가 프로이센 공주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작센이 끼어들게 됩니다. 당시 작센은 프로이센과 경쟁관계였으며 이때문에 러시아의 황태자비로 프로이센 공주가 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프로이센 공주였던 루이제 울리케가 러시아로 시집가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결국 두 나라간의 견제 속에 새로운 인물이 떠오르게 됩니다. 바로 안할트-제브르스트의 조피였습니다. 그녀는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된 아돌프 프레드릭의 조카였으며 이것은 아돌프 프레드릭의 가문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옐리자베타 여제가 그녀에게 긍정적이 된 원인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루이제 울리케의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이 혼담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는데 그는 안할트-제브르스트에 대해서 프로이센의 영향력이 컸던 것에 만족햇으며 이것은 조피가 러시아로 시집갈 경우 프로이센에도 이익이 될것이라 여겼습니다.
옐리자베타 여제는 자신의 조카 며느리로 조피를 선택했었지만, 프로이센의 공주에 대해서 호의적이었으며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와 프로이센 공주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러시아의 눈치를 보던 스웨덴에서 프로이센 공주를 왕위계승자와 결혼시키는데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스웨덴에서는 칼 구스타프 테신을 베를린으로 보냈으며 왕위계승자의 신붓감을 살펴보게 합니다. 이때 프리드리히 2세는 루이제 울리케가 아닌 막내 여동생인 안나 아말리를 왕비감으로 추천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안나 아말리가 루이제 울리케보다 좀 더 유순한 성격으로 정치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프리드리히 2세가 자신의 뜻을 더 잘 따를 여동생을 스웨덴으로 보내려했다는 것으로 생각할수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이미 스웨덴 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대해서 루이제 울리케 성격으로 반드시 정치에 개입해서 복잡한 상황을 만들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일수 있습니다. 또한 루이제 울리케는 20대 중반이 다되어가고 있었고 이것은 당대 왕가에서는 이미 노처녀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더 어린 여동생을 신붓감으로 추천한 것일것입니다. 하지만 테신은 안나 아말리 보다는 루이제 울리케에 대해서 더 좋게 봤으며 그는 루이제 울리케가 왕위계승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여겼었습니다.
결국 스웨덴에서는 루이제 울리케를 신붓감으로 선호했으며,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스웨덴쪽의 뜻을 알아챘고 결국 루이제 울리케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간의 결혼을 승인하게 됩니다. 루이제 울리케가 결혼을 하게 되었을때, 프리드리히 2세는 여동생에게 스웨덴의 역사와 정치 상황에 대해서 교육을 시키게 됩니다만 프리드리히 2세는 스웨덴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이때문에 여동생이 스웨덴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말기를 바랬다고도 합니다.
루이제 울리케가 스웨덴 왕위계승자와 결혼하기로 결정되었고 이제 루이제 울리케의 혼수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본적으로루이제 울리케는 다른 언니들과 똑같은 혼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니들과 달리 스웨덴의 왕비가 될 예정이었고 루이제 울리케에 대한 대우는 프로이센의 체면과도 연결되어있기에 연금을 좀더 많이 주게 됩니다.
1744년 7월 루이제 울리케는 베를린에서 대리혼을 치룬뒤 스웨덴으로 떠나게 됩니다. 베를린에서는 루이제 울리케의 결혼을 축하하는 화려한 축제가 열렸으며 루이제 울리케는 곧 스웨덴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1744년 8월 스톡홀름에 도착했고, 아돌프 프레드릭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스웨덴으로 간 루이제 울리케는 이제 스웨덴식으로 로비사 울리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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