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드디어 로비사 울리카 이야기를 하네요.
하지만 잠깐하고 또 스웨덴 이야기를 미친듯이 해야할듯하네요 아하하..
(스웨덴이야기는 뭐 맨날 쓰던 이야기라서 이것도 날로 먹는 것인가...=-0)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9) 어린시절
프로이센의 공주인 루이제 울리케는 1720년 7월 24일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그의 아내인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의 10번쩨 아이이자 여섯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루이제 울리케가 태어났을때 세명의 오빠와 언니 한명이 사망했었고 이때문에 루이제 울리케는 부모의 살아남은 여섯번째 아이이자 다섯번째딸이 되었습니다. 루이제 울리케가 태어날때쯤 대북방전쟁이 끝났고 스웨덴과 프로이센간의 조약이 체결되게 됩니다. 이때문에 루이제 울리케가 태어났을때 우호를 위해서 당시 스웨덴의 왕비였던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루이제 울리케의 대모가 되어주었으며 "울리케"라는 이름 역시 대모인 울리카 엘레오노라 왕비의 이름에서 따온것이기도 합니다. 루이제 울리케는 대모와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으며 1728년에는 왕비의 초상화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이것은 루이제 울리케가 훗날 스웨덴의 왕비가 되는 것에 대한 징조로 훗날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루이제 울리케는 프로이센의 공주였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재정적 문제에 민감했다고 하지만 프로이센 궁정은 루이제 울리케의 할머니나 할아버지대부터 예술과 음악 과학등을 후원했었으며 루이제 울리케의 어머니 역시 자신의 친정에서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었습니다. 또 루이제 울리케는 정략결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잘 받아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제 울리케는 당대 왕족 여성들이 필요한 여러 교양을 배우게 됩니다.
루이제 울리케는 세살때 처음으로 가정교사가 가르치지 시작합니다. 첫선생님은 프랑스 출신의 위그노였던 마르트 드 루쿨르Marthe de Roucoulle이었습니다. 그녀는 루이제 울리케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가정교사였으며 또한 루이제 울리케의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의 가정교사이기도 했었습니다. 마르트 드 루쿨르는 프로이센 왕실에 신임받던 가정교사였으며 이때문에 공주들의 교육도 모두 담당하게 되었고, 루이제 울리케의 첫번째 선생님 역시 그녀가 됩니다. 그리고 1734년에는 마르트 드 루클르의 딸인 마드무아젤 드 몽바일이 가정교사가 되었는데, 루이제 울리케는 마드무아젤 드 몽바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루이제 울리케와 그 형제들에게는 또다른 가정교사가 있었습니다. 역시 프랑스 위그노 출신이었던 마튀랭 베르시에르 라 크로즈Maturin Veyssiére la Croze 였습니다.
이 둘은 루이제 울리케의 주된 가정교사였는데 둘다 프랑스인이었으며 이들을 돕는 이들도 프랑스인이었기에 루이제 울리케는 어린시절부터 프랑스어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당대 유럽 상류층의 교양어는 프랑스어였으며 특히 외국 왕가로 시집가게 되는 왕녀들의 경우 시집간후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어를 아는 것은 필수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마르트 드 루쿨르가 공주들의 교양을 책임졌다면 마튀랭 라 클로즈는 문학이나 과학등의 부분을 책임 졌을 것입니다. 특히 마튀랭 라 크로즈는 외국어에 열정적이었으며 또한 과학등의 학문을 가르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제 울리케는 후에 크로즈의 영향으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으며 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루이제 울리케와 형제 자매들은 또한 예술에 대한 교육도 받았는데 음악이나 그림 시등을 배웠지만 루이제 울리케는 이런 예술분야에 대한 재능은 그리 특출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루이제 울리케는 훗날 스웨덴에서 여러 예술 활동을 장려했었으며 이것은 루이제 울리케가 다른 왕족 여성들처럼 예술의 후원자가 될수 있는 어느정도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루이제 울리케는 부모와 형제 자매들과 함께 베를린의 여러 거주지에서 생활했었습니다만 주된 거주지는 베를린 성이었습니다. 가문의 주된 성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루이제 울리케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사람들을 만났었습니다. 루이제 울리케는 상대적으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보다는 자신 또래였던 형제 자매들과 더 친했었는데 특히 제일 친했었 형제 자매는 바로 밑의 남동생이었던 아우구스트 빌헬름이었습니다.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와도 잘 지냈었다고 합니다만 아마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오빠였기에 루이제 울리케는 오빠에 대해서 좀 어려워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또 한살 차이나는 언니 조피 도로테아와도 가까웠는데 이것은 훗날 그녀가 조피 도로테아의 딸을 자신의 며느리로 지속적으로 원했던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루이제 울리케의 어린시절은 사실상 평온함이 더 컸습니다. 물론 부모가 자녀들의 결혼문제로 사이가 나빠졌었으며 집안에 큰 문제가 되기도 했었지만 기본적으로 자녀들을 보호하는 부모가 있었으며 이런 부모밑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었습니다. 그래서 루이제 울리케는 성인이 될때까지 궁정에서 평온한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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