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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8) 형제자매들(세번째)

엘아라 2022. 1. 1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형제 자매들 마지막입니다. =-=

로비사 울리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아직 책을 쬐금밖에 안 읽었습니다.

다행히 지난번에 글쓰면서 영어를 엄청 읽었더니 나름 독해속도가 쬐금 올라가서 책을 더 빨리 읽을수 있습니다. =-=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8) 형제자매들(세번째)

 

루이제 울리케의 여동생은 안나 아말리였습니다. 안나 아말리는 막내딸이었는데, 안나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장남과의 문제 때문에 자녀들에게 더욱더 억압적이 되어갔으며 자녀들이 예술을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안나 아말리는 아버지의 이런 행동 때문에 음악에 재능이 있었음에도 아버지 생전에는 음악 교육을 받을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억압적인 행동을 참고 지내야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뒤 안나는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나이차가 많이 나는 큰 오빠인 프리드리히 2세와 음악으로 공통점을 가지고 잘 지낼수 있었을 것입니다. 

 

프로이센의 안나 아말리, 로비사 울리카의 여동생

 

안나 아말리는 언니인 루이제 울리케와 함께 성장했는데, 이때문에 스웨덴에서 신붓감을 찾을때 안나 아말리 역시 신붓감으로 거론되었으며 프리드리히 2세는 좀더 순종적이었던 여동생인 안나 아말리를 스웨덴 왕비로 추천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안나 아말리는 젊은 시절 한 젊은 프로이센 귀족과 사귀었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스캔들로 발전했는데 이 젊은 프로이센 귀족은 떠벌리기 좋아했었으며 공주와의 관계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그를 추방하고 연금시켰는데 여동생의 명예를 실추시켰을뿐만 아니라 그의 집안에서 오스트리아와 접촉했다는 의심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나 아말리

 

안나 아말리는 오래도록 미혼으로 지냈으며 이것은 이전의 소문을 더욱더 부채질하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여동생을 위해서 퀴들린부르크 수녀원의 수녀원장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퀴들린부르크 수녀원은 독립적 영지를 가진 곳으로 이곳 수녀원장은 이 영지를 통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원래는 가톨릭 수녀원이었지만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수도원이 되었으며 안나 아말리는 이곳 수녀원장이 되면서 독자적으로 살수있는 경제적 기반을 갖게 됩니다. 안나 아말리는 이후 음악에 대해서 더욱더 집중했으며 음악을 작곡하고 수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퀴들린부르크 수녀원

 

루이제 울리케의 둘째 남동생은 하인리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프레데릭 하인리히 루드비히였습니다. 그는 큰형과 10살 이상 차이가 났으며 이때문에 아버지가 죽었을때 둘째형과 달리 미성년이었으며 그는 큰형인 프리드리히 2세의 휘하에서 군인으로 복무했었습니다. 그는 둘째형과 달리 큰형에게 좀더 순종적이었지만, 형의 외교적 군사적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형에게 대놓고 이야기할수 없었고 대신 가명으로 이런 비판을 출판하기도 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동생들에게 다정하지 않았는데 하인리히에게도 그다지 다정한 행동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이 억압받았던 것처럼 동생들에게도 그렇게 대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인리히는 다른 형제들처럼 군인으로 능력이 있었으며 7년 전쟁등에서 공을 세웠었습니다. 또 그는 외교관으로 일을 해서 유럽의 여러지역에서 활동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로비사 울리카의 남동생

 

하인리히는 형인 프리드리히 2세의 권유를 받아서 헤센-카셀의 빌헬미네와 결혼했습니다만 둘 사이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인리히는 형처럼 여자가 아닌 주변 남성들에게 더 많이 관심을 가졌으며 이것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문에 부부는 거의 따로 떨어져살았으며 둘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헤센-카셀의 빌헬미네

 

루이제 울리케의 막내 동생은 남동생으로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였습니다.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는 큰형인 프리드리히 2세와 18살 가량 차이났으며 당대에는 거의 부자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역시 형들처럼 프로이센 군인으로 복무했었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군 지위를 물러나야했었다고 합니다.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로비사 울리카의 남동생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는 조카였던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루이제와 결혼했었습니다. 루이제는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의 누나였던 조피 도로테아의 딸이었습니다. 외삼촌-조카사이였지만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는 조피 도로테아보다 11살 어렸었으며 이때문에 둘은 8살 정도 차이났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아름다웠고 또 부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었습니다. 둘 사이에서는 일곱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중 딸인 프로이센의 프레데리케 루이제는 라지비우 공과 결혼했는데 둘의 딸인 엘리자 프레데리케 라지비우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1세의 첫사랑으로 빌헬름 1세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루이제,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의 아내

 

이렇게 루이제 울리케는 수많은 형제자매가 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루이제 울리케와 안나를 제외한 모든 자매들이 호엔촐레른 가문의 분가 사람들과 결혼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루이제 울리케가 프로이센과 전혀 다른 정치 상황인 스웨덴으로 갔을때 스웨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품게 되는 원인중 하나였을수 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