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 여기 아라곤 하고 있었군요 아하하...
벌써부터 카스티야를 생각하니 암담합니다. -0-;;;
아라곤의 인판타들...(10) 아라곤의 비올란테 : 아라곤의 하이메 1세의 딸
아라곤의 비올란테, 아라곤의 욜란다
카스티야의 왕비
Violant or Violante of Aragon,
Yolanda of Aragon
(8 June 1236[citation needed] – 1301)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와 아라곤의 비올란테 그리고 장남인 페르난도 데 라 크레다
아라곤의 욜란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라곤의 비올란테는 1236년 아라곤의 국왕 하이메 1세(차이메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헝가리의 비올란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하이메 1세는 정복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정도로 여러 지역을 점령했었습니다. 마요르카와 미뇨르카 같은 지중해 섬들은 물론, 이슬람 세력에 있던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지역 역시 다시 점령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비올란테의 어머니인 헝가리의 비올란트는 헝가리의 국왕 언드라시 2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욜란다 드 코트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재미난 것은 하이메 1세의 고모였던 콘스탄사는 언드라시 2세의 형이었던 임레의 아내였었기도 합니다. 욜란다 드 코트니의 친가는 프랑스 방계 가문이었지만 외가는 라틴 제국 황가였기에 욜란다 드 코트니의 아버지인 피에르 드 코트니는 라틴 제국의 황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이메 1세의 아버지인 페드로 2세는 하이메 1세의 어머니인 몽펠리에의 상속녀 마리와 결혼해서 아들인 하이메 1세를 낳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이혼을 원했었으며 이를 위해서 과부가 된 누이였던 콘스탄사를 시칠리아의 국왕 페데리코(후에 황제 프레데릭 2세)와 결혼시키기도 했었죠.
하이메 1세는 원래 카스티야의 레오노르와 결혼했었지만 친족결혼으로 결혼이 무효화 된뒤 헝가리의 비올란트와 재혼한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아내에게서 아들을 한명 낳았지만 비올란트와의 사이에서는 많은 아이들을 낳았었습니다. 그중 비올란테는 첫번째 딸이었죠.
비올란테는 아주 어린시절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이 결정됩니다. 상대는 카스티야의 국왕이었던 알폰소 10세로 1240년 이미 합의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베리아 반도 내의 결혼은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기에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쉽게 무효화 할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알폰소 10세는 비올란테와 나이차도 많았으며 여러 여성과 이미 관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마요르 기엔 데 구스만이라는 여성과의 사이에서 베아트리스라는 딸을 얻었는데 알폰소 10세는 이 마요르 기엔 데 구스만에게 영지를 부여했을뿐만 아니라 딸인 베아트리스를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3세에게 시집보내기까지 했었습니다.
어쨌든 비올란테와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의 결혼은 성사되었으며 1249년 결혼식이 치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 몇년간 비올란테는 아이를 가질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비올란테가 너무 어려서였을 가능성이 컸는데 이미 나이가 많았고 후계자가 급했던 알폰소 10세는 1253년경 비올란테가 불임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하려할 정도였었습니다.
하지만 1253년 비올란테는 임신했으며 그해 말에 첫아이인 베렌겔라를 낳게 되죠. 이것은 비올란테가 불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후 비올란테와 알폰소 10세 사이에서는 11명의 자녀가 태어나게 되죠.
비올란테는 아마도 평범한 왕비로 카스티야에서 지냈을 것입니다만 왕위 계승문제에 관여하게 됩니다.
비올란테의 장남인 페르난도 데 라 크레다는 루이 9세의 딸인 블랑쉬와 결혼했었으며 두 아들을 얻었었습니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으며, 알폰소 10세는 손자들의 왕위계승권을 인정하지 않고 둘째아들인 산초에게 왕위계승자로 인정합니다. 이렇게 되자 블랑쉬는 당연히 오빠인 프랑스의 필리프 3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습니다만 결국 블랑쉬는 프랑스로 돌아가야했었죠. 블랑쉬의 두 아들이자 비올란테의 손자들은 비올란테가 남동생인 아라곤의 페드로 3세에게 보내서 보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올란테는 이 손자들이 계속 아라곤의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지원해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물론 비올란테는 아라곤에서 머물렀으며 둘째아들인 산초 4세와 산초의 아들인 페르난도 4세 시기에도 아라곤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올란테는 1300년 희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로 순례를 갔다가 돌아오던중 1201년 나바라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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