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꼬인 족보 나옵니다. ㅠ.ㅠ
음냐..그런데 여기 알비 십자군 시기가 나오는군요 이것도 좀 읽었다고 나름 익숙하네요
아라곤의 인판타들...(8) 아라곤의 레오노르 : 알폰소 2세의 딸
아라곤의 레오노르
툴루즈 백작부인
Eleanor of Aragon,
Countess of Tolouse
(1182–1226)
아라곤의 레오노르는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2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산차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알폰소 2세는 1196년 사망했기에 레오노르와 언니 콘스탄사 그리고 동생인 산차는 모두 오빠인 페드로 2세의 정책에 따라 결혼하게 됩니다.
페드로 2세는 툴루즈 백작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생들을 툴루즈 백작가문으로 시집보내게 됩니다. 1204년 레오노르는 툴루즈 백작이자 프로방스 후작이었던 레이몽 6세의 다섯번째 아내가 됩니다. 레이몽 6세는 레오노르보다 20살 이상 많았었으며 이전 결혼으로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의 세번째 아내이자 후계자가 되는 레이몽 7세의 어머니는 바로 잉글랜드 헨리 2세의 딸이자 리처드 1세의 여동생으로 시칠리아의 왕비였던 조앤이었습니다.
툴루즈 백작과 레오노르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으며 아마 프랑스 남부 지역의 강력한 영주였던 툴루즈 백작과의 연대가 중요했기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이 연대는 계속 이어져서 레이몽 6세의 아들인 레이몽 7세는 레오노르의 동생인 산차와 결혼하기도 합니다.(..언니가 시어머니..-0-;;; 또 꼬인 족보..)
이때 툴루즈 백작과 프랑스 국왕과 다른 영주들의 사이는 매우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특히 알비십자군은 명백히 툴루즈 백작과 그의 동맹세력을 노린것이기도 했죠. 레이몽 6세는 카르카손의 영주였던 레이몽 트란카벨과 함께 시몽드 몽포르와 대항했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교황에게 파문당했으며 영지도 몰수당해서 아들이 성인이 될때까지 교회의 소유아래 두게 되죠. 물론 레이몽 6세는 아라곤과의 연결고리를 더 강화하면서 버티게 된다고 합니다.
레오노르는 남편이 영지를 몰수당했을때, 그녀의 지참금은 남길수가 있었습니다. 레오노르는 이단이 아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인정받았기에 지참금을 뺏기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레오노르의 오빠가 아라곤의 국왕이었으며 언니가 헝가리 왕비였다가 다음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되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또 남편이 툴루즈 백작 지위를 뺏겼지만, 신성로마제국쪽 지위였던 프로방스의 후작 지위는 보존할수 있었기에 레오노르 역시 프로방스의 후작부인으로 남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217년 레오노르의 남편인 레이몽 6세는 다시 툴루즈 영지를 되찾았었다고 합니다.
레오노르는 툴루즈 백작 레이몽 6세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었으며 남편이 죽은 4년뒤에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아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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