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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7) 아라곤의 콘스탄사 : 알폰소 2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20. 12.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사실 헝가리쪽은 딱 언드라시 2세의 첫번째 부인이야기까지만 읽었습니다. (그 뒤에도 좀 읽은것이 있긴한데 그건 합스부르크가문이랑 연결되어서 읽은 거라서 말입니다.) 그래서언드라시 라는 이름이 낯익은데 싶었습니다.

 

뭐랄까 오페라때문에 읽었었는데 오페라에서는 부인이 나쁜 X라고 나왔는데 본인도 나쁜X 아닌가요--;;;

십자군 전쟁 가기로 하고 한재산 받아놓고는 안가고 형한테 반란이나 일으키고, 조카를 돌봐주겠다고 맹세해놓고는 그냥 꿀꺽하고 말입니다. 뭐 권력앞에서는 원래 그런것이긴 하지만 역시 뭐랄까 예술작품에서 묘사한것을 믿으면 안돼요 -0-;;;;;;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신성로마제국의 황후할때 콘스탄사를 했던것 같은데 왜 기억이 하나도 안날까요 -0-;;;;

 

아라곤의 인판타들...(7) 아라곤의 콘스탄사 : 알폰소 2세의 딸(두번째)

 

아라곤의 콘스탄사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비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Constance of Aragon 

(1179 – 23 June 1222)

 

아라곤으로 돌아온 콘스탄사는 어머니인 산차와 함께 살게 됩니다. 산차는 남편이 죽은뒤 수도원을 세워서 궁정에서 은퇴한뒤 그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콘스탄사 역시 어머니가 있는 수도원에서 살았었죠. 하지만 5년후 콘스탄사는 다시 속세로 돌아오게 됩니다. 역시 오빠인 페드로 2세 때문이었죠.

 

아라곤의 페드로 2세의 씰

 

페드로 2세는 몽펠리에의 마리와 결혼했었고 둘 사이에는 아들인 하이메가 있었죠. 하지만 페드로 2세는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마리와 헤어지길 바랬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예루살렘의 여왕인 몽페렛의 마리아와 결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리는 몽펠리에의 상속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국왕 자리와는 비교되지 않았었죠. 아내와 헤어지기 위해서는 교황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이때문에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편 인노첸시오 3세는 자신의 후견아래 있던 시칠리아의 국왕 페데리코(후에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헝가리 전 왕비와 결혼시키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페드로 2세는 인노첸시오 3세의 제안을 수락했으며 콘스탄사는 시칠리아의 국왕인 페데리코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라곤을 떠나게 되죠. 그리고 1209년 8월 30살의 콘스탄사는 15살도 안된 페데리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시칠리아의 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결혼 2년후인 1211년 콘스탄사는 페데리코의 아들인 엔리코(하인리히)를 낳았습니다.

 

시칠리아의 국왕 페데리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콘스탄사가 페데리코와 결혼한 때는 페데리코가 이제 독일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때였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으로 황제 하인리히 6세의 아들인 페데리코는 자신에게 황위계승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그가 독일로 원정을 떠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1212년 페데리코는 독일의 국왕으로 선출되었으며 벨프 가문 출신의 당시 황제였던 오토 4세와 싸우게 됩니다. 남편이 시칠리아를 떠나있는 동안 콘스탄사는 아마 섭정으로 시칠리아를 통치했을 것입니다. 남편이 자리를 비웠을때 남편을 대리하는 것이 황후나 왕비의 의무중 하나이기도 했었습니다. 

 

1215년 프리드리히가 정식으로 독일 국왕으로 대관했을때 콘스탄사도 남편과 함께 독일의 왕비로 대관했었으며 1220년 프리드리히가 황제 프리드리히 2세로 대관할때 콘스탄사 역시 황후로 대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관한지 2년만인 1222년 콘스탄사는 말라리아로 사망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였던 콘스탄사의 관

 

콘스탄사의 아들이었던 하인리히는 독일의 국왕으로 선출됩니다.이것은 황제의 후계자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하인리히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로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6세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결국 아버지와 사이가 벌어졌으며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배했으며 붙잡히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하인리히를 투옥하고 후계자자격을 박탈했으며 하인리히의 이복동생인 콘라트에게 후계자 자리를 줬습니다. 하인리히는 아버지에게서 용서받길 원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콘스탄사의 아들 하인리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