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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6) 아라곤의 콘스탄사 : 알폰소 2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20. 12.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이제 좀 아는 내용이 나오려나요...

모르는 내용은 뭐랄까 배경까지 다 읽어야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흑

 

아라곤의 인판타들...(6) 아라곤의 콘스탄사 : 알폰소 2세의 딸 (첫번째)

 

아라곤의 콘스탄사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비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Constance of Aragon 

(1179 – 23 June 1222)

콘스탄사의 씰

 

 

아라곤의 콘스탄사는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2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산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콘스탄사의 아버지인 알폰소 2세는 어머니인 페트로닐라로부터 아라곤 왕국을 아버지인 레몬 베렌게 4세로부터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카스티야와 연합해서 이슬람 세력과 나바라에 대항했었다고 합니다.

콘스탄사의 어머니인 카스티야의 산차는 카스티야의 국왕이자 카스티야-레온-갈리시아를 통치해서 "황제"칭호까지 썼던 알폰소 7세의 딸이었습니다. 아마도 산차와 알폰소 2세의 결혼은 아라곤과 카스티야의 동맹을 위한 것이었을 듯합니다. 당시 카스티야 국왕이었던 알폰소 8세는 알폰소 7세의 손자로 산차는 알폰소 8세의 고모였습니다. 물론 산차는 알폰소 7세의 두번째 아내의 딸로 알폰소 8세와 나이차가 그리 나지 않았으며 이때문에 아마도 카스티야의 알폰소 8세는 정략결혼으로 고모를 아라곤으로 시집보낸듯합니다.

 

아라곤의 알폰소 2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산차

 

콘스탄사의 아버지인 알폰소 2세는 1196년 사망했으며, 이때문에 콘스탄사의 결혼은 오빠인 페드로 2세가 결정합니다. 페드로 2세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인 임레(에머릭)에게 콘스탄사를 시집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둘은 1196년에서 1200년 사이에 결혼했으며 1200년 둘의 아들인 라슬로(라디슬라우스)가 태어나죠. 그리고 1204년 남편인 에머릭이 사망하면서 콘스탄사의 아들인 라슬로가 라슬로 3세가 됩니다. 하지만  헝가리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콘스탄사의 남편이었던 임레는 1196년 아버지가 죽은 뒤 왕위에 올랐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동생이었던 언드라시였습니다. 언드라시는 십자군 원정에 참전한다는 조건으로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만 이후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형인 임레에게 자신의 독자적 권리를 요구했으며 결국 형과 꾸준히 전쟁을 하게 됩니다. 임레는 동생을 억눌렀습니다만 결국 1204년 병에 걸리자 동생과 화해를 하면서 어린 아들의 섭정으로 동생을 앉히게 되죠.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임레의 씰

 

언드라시는 조카였던 라슬로 3세의 섭정이 되었지만 조카를 제치고 자신이 전권을 휘두르게 됩니다. 교황은 언드라시에게 경고를 했지만 언드라시는 이를 듣지 않게 됩니다. 콘스탄사와 라슬로 3세는 언드라시의 포로나 마찬가지였으며 아마도 콘스탄사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언드라시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걸림돌인 라슬로 3세에게 손을 뻗을 것이기 때문이었죠. 

 

라슬로 3세, 콘스탄사의 아들

 

결국 콘스탄사는 아들을 데리고 도망치기로 결정합니다. 콘스탄사가 아들을 데리고 찾아간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공작이었던 레오폴트 6세를 찾아가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6세는 어머니가 헝가리 공주로 임레와 언드라시와는 사촌관계였었습니다. 이전에도 헝가리 문제에 개입했던 적이 있었죠. 

 

레오폴트 6세는 라슬로 3세의 권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헝가리를 공격할 명분을 얻게 됩니다. 당연히 언드라시는 역시 레오폴트 6세와의 전쟁을 준비했었습니다만 1205년 라슬로 3세는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라슬로 3세가 죽자 언드라시는 자연스럽게 헝가리 왕위를얻어서 언드라시 2세가 됩니다. 헝가리 국왕이 된 언드라시 2세는 조카의 시신을 헝가리로 옮겨오게 되죠. 

 

언드라시 2세의 씰

 

과부였으며 이제 아들마저 잃은 콘스탄사는 더이상 헝가리나 오스트리아에 있을 명분이 없었으며 레오폴트 6세는 콘스탄사를 아라곤으로 돌려보내줬다고 합니다.

 

아마 중세에 이런 경우는 보통 여성들이 수도원으로 은퇴해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콘스탄사의 삶은 여전히 정치의 중심에 있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