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20) 리처드 3세 시기의 마지막

엘아라 2021. 2.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하....ㅠ.ㅠ

최근에 날씨가 막 이상했지 않습니까 갑자기 한파가 몰려왔다가 다시 날이 풀리다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딱 추워지는 시기에 맞춰서 귀신같이 머리가 아프더라구요. 웃긴것은 제가 추운날은 집에서 아예 안 나갔다는 것입니다. 안나가서 그냥 실내에서 똑같은 시간으로 살았거든요.=-= 그런데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요즘에 머리가 아프면 뭐랄까 좀 많이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의욕이 상실된다고 할까요.ㅠ.ㅠ

어릴땐 사실 그냥 아프면 아 아픈가보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뭐랄까 나이가 드니까 아픈것이 겁나요 ㅠ.ㅠ

이런것 있지 않습니까. 아 또 아프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죠 ㅠ.ㅠ 그러니 삶이 참 우울해지더라구요.

 

게다가 제가 글쓸때 꼭 커피(아메리카노)를 들이켜야하거든요 -0-;;; 뭐랄까 이건 진짜 심리적인 요인인데 최근에 위가 너무 아파서 커피를 안마셨다죠. 그러니 위는 안아픈데 대신 글이 잘 안써지더라구요. 글도 안써지는데 머리 아파서 우울하고 하니....ㅠ.ㅠ  그래서 글이 밀렸습니다...ㅠ.ㅠ

 

하여튼 힘내서 쓰던 글을 끝내보겠습니다.(..커피 마셨습니다. -0-;;;)

 

[새해특집]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20) 리처드 3세 시기의 마지막

 

버킹엄 공작의 반란 실패는 잉글랜드 내에서 리처드 3세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버킹엄 공작의 반란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리처드 3세는 이들을 처분할 명분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 3세 역시 정통성에 대한 문제가 있었으며 이것은 반란에 연루된 모든 이들을 강력하게 처분할 권리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레이디 마거릿은 반란 수괴의 어머니였기에 리처드 3세의 가장 큰 타겟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인 토마스 스탠리나 그의 가족들은 그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기에 만약 레이디 마거릿에 대한 처분이 너무 심하거나 아니면 스탠리 가문의 이익을 너무 침해할 경우는 스탠리 가문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리처드 3세는 레이디 마거릿에 대한 처분을 스탠리 가문의 이익에 부합하게 합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사권박탈 당했지만, 레이디 마거릿과 마거릿의 영지에 대한 모든 것은 마거릿의 남편인 토마스 스탠리가 관리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레이디 마거릿은 토마스 스탠리의 영지에서 머물면서 외부 활동을 전혀할수가 없었습니다. 궁정 출입이 불가능해진것은 물론, 자신의 영지에 갈수조차 없었죠.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의 영지에 대한 권리는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인 토마스 스탠리에게 부여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토마스 스탠리가 살아있는 동안 레이디 마거릿의 영지에 대한 권리와 이익을 얻을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레이디 마거릿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가해서 더이상 레이디 마거릿이 아들을 돕거나 아니면 리처드 3세에 대한 다른 반란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인 토마스 스탠리는 단순히 충성스러운 인물이 아니었기에 아마 이때부터 리처드 3세와 자신의 의붓아들인 헨리 튜더와의 사이를 두고 더 고민하게 되었을 듯합니다.

 

토마스 스탠리, 레이디 마거릿의 네번째 남편

 

레이디 마거릿이 이렇게 꼼짝 못하게 된 동안, 전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레이디 마거릿과 연락하면서 자신의 장녀를 헨리 튜더와 결혼시키기로 했었던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압력을 가하게 되죠. 비록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딸들은 웨스트민스터의 성소에 머물고 있었기에 안전은 보장되었지만 바깥에 있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가족들의 안전은 보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남동생이나 첫번깨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이 있었기에 이들을 위해서 결국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리처드 3세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성소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녀는 성소에서 나와서 가택 연금을 당했으며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딸들은 이제 숙부였던 리처드 3세의 보호아래 있게 됩니다.

 

리처드 3세는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형인 에드워드 4세의 자녀들의 계승권을 인정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리처드 3세는 남아있던 조카들이 모두 적자가 아니라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시켰으며 이것은 이전에 레이디 마거릿이 에드워드 4세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아들인 헨리 튜더를 결혼시켜서 잉긆랜드 왕위계승권리를 더욱더 강화하려했던것을 염두에 둔것이라고도 할수 있을 듯합니다.

 

이렇게 리처드 3세의 왕권은 안정되는 듯 했지만 점차 그는 불운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버킹엄 공작의 반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484년 리처드 3세의 유일한 적자였던 미들햄의 에드워드가 사망한것입니다. 겨우 10살의 나이로 아들을 잃은 리처드 3세와 그의 아내인 앤 네빌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특히 앤 네빌은 아들을 잃고 난뒤 큰 충격에 빠졌으며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게 되죠. 

 

리처드 3세와 앤 네빌

 

1484년 크리스마스에 리처드 3세는 자신의 조카인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궁정에 데려오게 됩니다. 아마도 리처드 3세는 정치적 목적으로 조카를 데려왔을 것입니다.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브리튼섬 최고의 미녀라고 알려졌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딸이었으며 이때문에 그녀 역시 아름다웠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리처드 3세는 조카에 대해서 매우 다정하게 대해주게 됩니다. 이것은 궁정내에서 큰 스캔들로 발전하는데 많은 이들이 리처드 3세가 적자가 없었으며 아내인 앤 네빌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이들이 리처드 3세가 아내인 앤 네빌이 죽거나 아니면 앤과 이혼을 하고 조카와 결혼하려한다는 말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심각하게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1485년 3월 시름시름 앓던 앤 네빌도 사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더욱더 리처드 3세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조카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내를 죽였다는 소문마저 돌게 되죠.

 

아마 아내가 죽은뒤 리처드 3세는 재혼할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카인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아니었을것입니다. 몇몇 기록에서 리처드 3세가 정치적 동맹을 목적으로 조카를 유럽의 왕가로 시집보내려는 궁리를 했던 것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이것은 조카의 적자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에 결혼 동맹을 통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될만한 아내를 얻고 또 조카를 자신의 적이 아닌 동맹에게 시집보내서 왕권을 안정시키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리처드 3세와의 관계에 대해서 쑥덕대는 것을 멈출수 없었으며 이것은 주변 신하들의 동요를 일으키게 됩니다. 

 

당대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에 따르면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이미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이었던 스탠리 경과 만났으며 왕비가 죽은뒤 그의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훗날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스탠리 경의 의붓아들인 헨리 튜더와 결혼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스탠리경의 보호아래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어쩌면 이미 스탠리 경 역시 이미 의붓아들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것입니다.

 

어쨌든 이제 리처드 3세 치세의 마지막을 향해 가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