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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8) 에드워드 4세 사후 정치 상황 : 리처드 3세의 즉위

엘아라 2021. 1.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원래 20편이 목표였는데 더 길어질듯합니다...ㅠ.ㅠ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8) 에드워드 4세 사후 정치 상황 : 리처드 3세의 즉위

 

에드워드 4세가 살아있었을때 그의 궁정은 두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한쪽은 기존의 요크 공작 가문을 중심으로 그들을 지지했던 세력이었으며 다른 한쪽은 바로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 일족을 중심으로하는 세력이었죠.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은 기존의 요크 가문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반발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워릭 백작은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었죠.  이후 표면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 일족이 더욱더 힘을 얻는듯했습니다. 하지만 불만이 없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죠. 단지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충성심때문에 무마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죽고 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가 죽고 그의 아들이자 미성년이었던 에드워드가 이제 국왕 에드워드 5세가 됩니다. 에드워드 4세는 어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늘 충성스러웠던 막내동생인 리처드를 호국경Lord Protector로 임명하는 유언을 남기게 되죠. 아마도 리처드를 호국경으로 세운 것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 일족들이 어린 국왕을 꼭두각시로 삼고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려 할 것을 우려했었던 것일듯합니다.

 

사실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 일족들은 에드워드 4세가 죽고 나면 다른 이들이 그들에게 적대적이 될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이들은 당연히 새 국왕을 자신들의 영향력아래 두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서둘러 아들과 자신의 남동생인 리버스 백작을 런던으로 오게 만듭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글로스터 공작에게 국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글로스터 공작은 스코틀랜드와의 전투를 위해 북쪽으로 가 있는 상황이었으며 아마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그를 배제하기 딱 좋은 시기라고 여겼을듯합니다. 하지만 글로스터 공작 측 사람이었던 인물이 글로스터 공작에게 국왕의 죽음과 유언에 대해서 알려주게 되었고 글로스터 공작은 바로 런던으로 오게 됩니다. 사실 처음에는 글로스터 공작은 새 국왕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편지를 보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런던을 향해 오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바뀌게 됩니다.바로 버킹엄 공작이었던 헨리 스태퍼드였습니다. 헨리 스태퍼드는 레이디 마거릿의 세번째 남편의 조카이자, 레이디 마거릿의 사촌이었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사촌인데 이름이 같습니다.-0-;;;)의 아들이기도 했었습니다. 버킹엄 공작은 우드빌 가문을 대놓고 싫어했었는데 가장 큰 이유가 그의 아내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여동생인 캐서린 우드빌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킹엄 공작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왕비였기 때문에 그녀의 여동생이었던 캐서린 우드빌과 어린 나이에 결혼하라고 강요받았는데, 버킹엄 공작은 우드빌 가문 같이 신분이 높지 않은 가문의 딸과 결혼해야했던 것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었다고 합니다.

 

글로스터 공작과 버킹엄 공작은 에드워드 5세와 그의 외삼촌인 리버스 백작 그리고 이부형이었던 리처드 그레이와 만나게 되죠. 그리고 곧 사건이 일어납니다. 글로스터 공작은 리버스 백작과 리처드 그레이를 반역죄로 몰았으며 그들에게서 국왕을 뺏습니다. 이것은 아마 우드빌 가문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의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알게 되자마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웨스트민스터의 성소로 몸을 피하게 되죠. 하지만 막내아들인 요크 공작 리처드는 런던탑으로 보내게 됩니다.

 

에드워드 5세와 글로스터 공작은 함께 런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버킹엄 공작은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인 요크 공작 리처드를 대관식 준비를 위해서 런던탑에 보내도록 만듭니다. 런던탑은 튜더 시대를 거치면서 감옥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지만, 이전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가의 식구들이 머물던 거주지중 하나였는데 에드워드 4세가 가장 좋아한 거주지중 하나가 바로 런던탑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이 시기에 런던탑은 호화로운 왕실 거처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의 권력은 점차 강해지게 되었고, 점차 그가 왕위를 원한다는 소리가 커져갑니다. 실제로 리처드는 형의 결혼이 중혼이라는 생각이 커져갔고 이때문에 조카들이 왕위계승권리가 없다고 여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회는 처음에는 리처드의 계승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에드워드 4세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이 당연히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야한다고 여겼었죠. 하지만 리처드는 이들을 결국 몰아냈으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다집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5세의 즉위식을 위해 모인 많은 귀족들 앞에서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이 적법하지 않으며 이때문에 조카들 역시 적자가 아니기에 계승권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리처드는 스스로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3세가 됩니다.

 

이 사이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작 리처드는 런던탑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대부분은 바로 살해당했다고 추측하죠. 이 어린 왕자들이 사라진것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조카를 대신해서 국왕이 된 리처드 3세였습니다. 당연히 그는 조카들이 사라지고 난뒤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다른 용의자는 바로 버킹엄 공작 헨리 스태퍼드였습니다. 헨리  스태퍼드는 리처드에게 충성을 하고 있었으며 그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이 사라져야한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죠.

 

이렇게 리처드 3세는 사실상 많은 이들의 불만을 억압하면서 스스로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왕국내 불안정한 요소로 계속 남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