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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5)랭카스터의 마지막 : 아들과 남편과 이별
요크 치세하의 레이디 마거릿의 삶은 애매한 것이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랭카스터 가문의 직계 혈통이었으며 그녀의 남편 역시 헨리 6세를 위해서 전투에 참전했었습니다. 이때문에 비록 에드워드 4세가 자신의 사촌을 용서하긴 했지만 그에게 궁정에 지위를 주지는 않았으며 이것은 레이디 마거릿이 역시 궁정에 가서 머무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에드워드 4세가 사촌을 아예 냉대한 것은 아니었으며 헨리 스태퍼드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가끔 런던으로 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헨리 스태퍼드의 동생인 험프리 스태퍼드에게는 데본 백작 지위를 부여했지만 헨리에게는 아무런 지위도 부여하지 않은 것은 그가 명백히 레이디 마거릿과 헨리 스태퍼드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은 레이디 마거릿과 헨리 스태퍼드가 자신들의 영지에 집중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영지에 집중하면서 여러지역을 방문했었습니다. 또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어머니와 더욱더 가까워졌으며 이복 형제 자매들과도 가깝게 지냅니다. 또 영지를 돌면서 아들을 한번 만나러 가기까지하죠.
하지만 이런 삶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서 깨지게 됩니다. 1460년대를 지나면서 요크 가문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시작은 바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이었습니다. 워릭 백작은 프랑스와 동맹을 위해서 유럽의 공주를 에드워드 4세의 신붓감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거의 성사되어가고 있을때 에드워드 4세는 뜬금없이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해버립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영향력 있는 가문 출신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아이들이 있는 과부였으며 더군다나 랭카스터 가문과 연결고리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비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녀에 대해서 껄끄럽게 생각하죠. 워릭 백작과 관계는 더욱더 틀어지게 되는데, 특히 워릭 백작이 자신의 딸들을 에드워드 4세의 동생들과 결혼시키려했을때 더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는 자신은 자기 마음대로 결혼했지만 동생이 워릭 백작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은 워릭 백작은 물론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에게도 불만을 사게 되는 것이었죠. 워릭 백작에게는 딸만 둘이 있었기에 워릭 백작의 딸과 결혼하는 것은 엄청나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기에 불만이 많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에드워드 4세가 레이디 마거릿과 헨리 스태퍼드의 영지를 방문했을때 이런 상황에 대해서 짐작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화는 레이디 마거릿의 아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결국 워릭 백작과 클라렌스 공작은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워릭 백작과 클라렌스 공작의 공격 대상중 한명이 바로 헨리 튜더의 후견인이었던 펌브로크 백작 윌리엄 허버트와 레이디 마거릿의 시동생인 데본 백작이 죽었습니다. 문제는 이때 윌리엄 허버트가 헨리 튜더를 전투에 데리고 갔다는 것이었죠.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었으며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물론 이 복잡한 상황에서 국왕 에드워드 4세는 잠시 갇혔다가 다시 복귀했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후견인이 죽었기에 이제 다시 한번 아들을 자신에게 데려오려합니다만 윌리엄 허버트의 과부였던 앤 역시 헨리를 포기할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헨리를 양육하면서 엄청난 양육비를 받았기 때문이었죠. 레이디 마거릿은 결국 아들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어서 워릭 백작은 프랑스로 가서 망명중이었던 앙주의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만납니다. 그리고 워릭 백작은 자신의 막내딸인 앤 네빌을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결혼시키기로 하면서 앙주의 마거릿과 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로 진격하죠. 이 상황은 에드워드 4세에게 치명적이었기에 그는 서둘러 부르고뉴로 망명해야했으며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웨스트민스터의 성소로 대피해야했었습니다. 그리고 헨리 6세가 다시 복위하죠.
이때 레이디 마거릿의 시동생이었던 재스퍼 튜더는 조카인 헨리 튜더를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헨리 6세와 만나게 하죠. 헨리 6세는 자신이 아꼈던 동생의 아들에 대해서 매우 잘 대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스퍼는 헨리의 양육권을 얻었으며 레이디 마거릿에게 헨리를 데리고 갑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이제 10대가 된 아들을 만나게 되죠. 그리고 모자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게 됩니다. 모자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만 이 시기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을 것입니다. 특히 헨리 튜더는 오래도록 어머니를 신뢰하고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인것을 보면 그가 어머니에 대해서 낯설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하는 상황은 오래가지 못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의 사촌인 서머셋 공작이 찾아와서 헨리 스태퍼드에게 랭카스터측에 합류하라고 청원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레이디 마거릿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헨리 스태퍼드의 행동은 아마 훗날 레이디 마거릿의 안위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헨리 스태퍼드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이끌고 에드워드 4세의 군대에 합류합니다. 아마 그는 급하게 이를 결정했을듯합니다. . 헨리 스태퍼드는 아내에게 남기는 유서를 급히 작성할 정도였었습니다.
남편이 떠나고 얼마뒤 레이디 마거릿은 에드워드 4세가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그녀가 아들의 안위를 심각하게 걱정해야할 원인이 됩니다. 마지막 전투 이후 헨리 6세를 비롯한 랭카스터 가문과 보퍼트 가문 남성후계자들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보퍼트 가문에서 여성 후계자로는 가장 우선권을 가진 이가 바로 레이디 마거릿이었으며 그녀의 아들 역시 그녀의 권리를 이어서 랭카스터 가문의 후계자로 칭할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무자비하게 적에게 용서를 하지 않고 있는 에드워드 4세 측이었기에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할수 밖에 없었스빈다. 헨리는 재스퍼 튜더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기로 합니다. 재스퍼 튜더는 레이디 마거릿에게 조카를 자신의 아들처럼 돌보겠다고 약속했으며 둘은 서둘러 프랑스로 떠나서 브르타뉴 공작령에 도착하죠. 그리고 브르타뉴 공작은 이들을 환영하고 돌봐주게 됩니다.
아마 아들이 떠날무렵 레이디 마거릿은 남편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서둘러 남편을 만나러 런던으로 갔었죠. 레이디 마거릿은 남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그는 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1471년 10월 사망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언장에서 마거릿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라고 이야기하죠.
레이디 마거릿은 이제 자신을 지켜줄 남성 친척들 하나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들과 시동생인 재스퍼 튜더는 멀리 바다건너 프랑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죽었죠. 그리고 그녀의 친척들 역시 대부분 반역자라는 이름으로 처형당했으며 레이디 마거릿 역시 여전히 국왕 에드워드 4세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은 레이디 마거릿이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찾아서 다시 한번 결혼하기로 결정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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