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12편을 쓰는데 이제 아들이 태어나네요.-0-;;;;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2)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탄생
요크 공작이 권력을 장악했으며 이제 왕위를 위협하고 있었죠. 요크 공작은 헨리 6세에게 충성한다고 주장했었지만 그의 후계자는 인정하지 않으려했으며 이것은 후계자의 어머니이자 왕비였던 앙주의 마거릿이 이들에게 적대적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앙주의 마거릿은 자신에게 충성적인 사람들을 모으게 되죠. 여기에는 레이디 마거릿과 그녀의 남편인 에드먼드 튜더 그리고 시동생인 재스퍼 튜더도 있었습니다.
1455년 연말, 에드먼드 튜더는 아내인 레이디 마거릿과 함께 웨일스로 가게 됩니다. 잉글랜드 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덩달아 웨일스에서도 다시 상황이 불안정해졌으며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에 국왕의 측근이자 웨일스쪽 가문 출신인 에드먼드 튜더가 웨일스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간것이었을 듯합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평생 잉글랜드에서만 지냈던 여성이었으며 비록 남편이나 시아버지가 웨일스와 연결고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매우 낯선 곳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그녀는 아마 남편밖에 의지할수 없었을 것이며 이것은 부부를 좀더 가깝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1456년 여름, 레이디 마거릿은 임신한것을 알게 됩니다. 당연히 남편인 에드먼드 튜더는 자신의 후계자가 생기는 것에 너무나도 좋아했다고 합니다만, 레이디 마거릿에게는 임신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을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무사히 낳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아이를 무사히 낳기 위해 고민할때, 정치적 상황은 더 복잡하게 됩니다. 헨리 6세는 실권없는 국왕일뿐이었으며 그의 아내인 앙주의 마거릿과 요크 공작 리처드 간의 투쟁이 점차 더 격화되죠. 에드먼드는 웨일스에 있었지만 재스퍼 튜더는 이부형인 헨리 6세 곁에 있으면서 그와 더욱더 가까워졌으며 헨리 6세 역시 자신의 동생에게 더 신뢰를 가졌다고 합니다. 또 앙주의 마거릿은 레이디 마거릿의 사촌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머셋 공작이 된 헨리 보퍼트를 신회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관계는 레이디 마거릿과 에드먼드 튜더의 존재는 요크 가문쪽에서 매우 중요한 적중 하나로 간주하게 만들었을 듯합니다. 그리고 1456년 요크 공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웨일스로 왔으며 카마던 성에서 에드먼드 튜더를 사로잡게 되죠.
아마 남편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에 레이디 마거릿은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랬을 듯합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인 에드먼드 튜더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1456년 11월 웨일스에서는 흑사병(가래톳 페스트)가 돌게 됩니다.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죠.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인 에드먼드 튜더 역시 카마던 성에서 갇힌채 흑사병으로 사망합니다. 하지만 그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 역시 오래도록 퍼져나갔습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레이디 마거릿은 겨우 만으로 14살이 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게다가 몇달후에 아이를 낳을 예정이었죠.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은 남편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장 그녀 스스로도 위험에 처해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주변에 도와줄 사람하나 없는 웨일스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레이디 마거릿과 마거릿의 아이 둘다 목숨을 잃을수 있는 출산이 가까워오고 있었죠. 배가 많이 불렀기에 자신을 도와줄 어머니가 있는 잉글랜드로 갈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게다가 웨일스에서는 흑사병이 돌고 있었죠. 레이디 마거릿은 아이를 낳기전 남편처럼 감염되어서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또 이제 막 보호자를 잃은 상속녀를 노리는 사람들도 있었죠. 레이디 마거릿의 재산과 지위를 노리고 그녀를 납치할수도 있었습니다.
재스퍼 튜더는 어린시절부터 늘 함께 했던 형인 에드먼드 튜더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것은 그가 형수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카를 지키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재스퍼 튜더는 펌브로크 백작이었으며 그의 펌브로크 성은 레이디 마거릿이 있던 곳과 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둘러 형수를 펌브로크 성으로 데려왔습니다. 비록 펌브로크 백작은 미혼이었기에 여성식솔들이 부족했고 이것은 출산을 앞둔 레이디 마거릿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웨일스에서 홀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했던 레이디 마거릿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1457년 1월 말 레이디 마거릿은 출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457년 1월 28일 리치몬드 백작의 유복자이자 레이디 마거릿의 유일한 아들이 될 헨리 튜더가 태어나게 되죠. 만 14살도 되지 않은 레이디 마거릿에게 출산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이후 아이를 낳을수 없었는데 어린 나이에 출산한 결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신적 충격도 매우 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 울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으며 또 훗날 아들인 헨리 7세가 손녀인 마거릿 튜더를 어린나이에 스코틀랜드로 시집보내려하자 반대하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트라우마는 오래 남았겠지만 일단 레이디 마거릿은 출산에서 살아남았으며 그녀의 아들 역시 살아남았죠. 그리고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다시 방법을 찾아야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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