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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1) 두번째 결혼

엘아라 2021. 1.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한달 내내 쓸수 있을것 같습니다. 쿨럭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1) 두번째 결혼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사건인 장미전쟁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12살이 되기 직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2살이 된 레이디 마거릿에게는 전쟁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일어나게 되죠. 바로 두번째 결혼이었습니다. 

 

헨리 6세가 1453년 레이디 마거릿와 존 드 라 폴의 결혼을 무효화 했을때 아마 레이디 마거릿도 국왕이 자신을 그의 동생과 결혼시키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훗날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두번째 남편인 에드먼드 튜더와의 결혼이 첫번째 결혼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친구가 된 피셔 주교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 결혼 제안에 대해서 들었을때 확신이 없었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자신의 지인인 귀부인이 성 니콜라스에게 기도를 드리라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레이디 마거릿은 기도했으며 성인은 그녀에게 "에드먼드"라는 이름을 선택하라는 계시를 내렸다는 것이었죠.

 

겨우 10살도 되지 않았던 소녀가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한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할것입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없었는데, 국왕은 이미 그의 이부동생을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감으로 선택해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국왕이 된 아들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레이디 마거릿은 결혼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아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던 어머니였던 레이디 마거릿이 국왕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신이 결국 선택할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것일수도 있을지도 모르긴합니다.

 

비록 세인트 알반스 전투가 일어났고 마거릿의 숙부등 요크 공작의 정적들 상당수가 살해당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요크 공작은 국왕에게 충성을 한다고 주장했었기에 피의 숙청은 일어나지 않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혼란한 상황은 리치몬드 백작이었던 에드먼드 튜더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서둘러 결혼하기로 결정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같은 엄청난 영지를 가진 상속녀는 다른 많은 이들의 관심 대상이 될것이었고 특히 요크 가문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에드먼드 튜더의 결혼식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바가 없습니다. 1455년 9월경에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장소는 아마 레이디 마거릿이 태어나고 자란 블렛소성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참석한 사람은 아마 레이디 마거릿의 어머니인 마거릿 보챔프와 에드먼드 튜더의 아버지인 오웬 튜더와 동생인 재스퍼 튜더가 참석했던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리치몬드 백작은 레이디 마거릿과의 결혼에서 바로 결혼을 "완성"시켰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교회법상 12살 이상의 여성과 성적 관계가 허용되기에 이것은 당대 관념으로는 범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대 사람들도 아직 성적으로 덜 성숙한 여성과의 성적 관계는 치명적일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결혼하더라도 결혼의 완성을 미루는 경우도 종종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대 관점을 현대 관점으로 볼수는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혼의 완성을 미루는 경우도 있었지만 만 12살 이상의 여성에 대한 성적 관계를 허용한다는 것은 그것조차 안지켜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결국 리치몬드 백작은 그냥 당대 관념을 지켰던 사람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에게 정신적 육체적 타격을 줬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으며 이후 더이상 아이를 낳을수없게 됩니다. 훗날 레이디 마거릿은 손녀가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스스로의 경험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이 남편에 대해서 부정적 생각을 가졌지는 않습니다. 사실 남편을 거의 알지 못했었죠.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은 후에도 아들의 아버지이자 자신이 첫번째 남편이라고 여겼던 에드먼드 튜더에게 좋은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를 위해 늘 기도하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그의 무덤에 대해서 신경을 썼었습니다.

 

어쩌면 레이디 마거릿은 잠시 함께 산 시간동안 에드먼드 튜더에 대한 기억이 너무 나쁘지는 않았을수도 있을듯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오래 살았다면 그와 함께 하면서 안정된 삶을 살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은 레이디 마거릿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첫번째 남편이라고 주장한 남자와 오래 함께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