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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9) 튜더 형제들

엘아라 2021. 1.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책을 덜 읽었더니 글이 늘어지네요 엉엉엉...ㅠ.ㅠ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9) 튜더형제들

 

1453년 2월 만 10살이 되지 않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어머니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국왕 헨리 6세와 그의 아내인 앙주의 마거릿을 알현하게 됩니다. 이것은 국왕인 헨리 6세의 의지로 복잡한 정치적 관계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때쯤 정치적 상황은 매우 복잡해지게 됩니다. 헨리 6세의 통치에 대해서 점차 불만이 커지게 됩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은 실패했고 오랜 전쟁은 당연히 경제가 피폐해졌으며 이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헨리 6세의 측근들에 대한 공격이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불만 세력의 중심에는 요크 공작 리처드가 있었습니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먼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시아버지였던 서퍽 공작에 대한 공격에도 중심적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뒤 권력자가 된 레이디 마거릿의 숙부였던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도 마찰을 빚게 되죠.

 

이런 갈등으로 요크 공작은 자신의 계승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을듯합니다. 1445년 헨리 6세는 앙주의 마거릿과 결혼했지만 오래도록 둘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요크 공작이 자신의 계승권리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크 공작은 헨리 6세와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3세의 후손입니다. 그는 부계로는 랭카스터 공작의 동생인 요크 공작 랭글리의 에드먼드의 후손이었지만 모계로는 랭카스터 공작의 형인 클라렌스 공작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관계를 들어서 헨리 6세의 후계자로 자신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에 대해서 왕가에서는 반발하게 됩니다.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은 아마도 왕비였던 앙주의 마거릿이었을 것입니다. 남편보다 더 의지가 강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이라고 알려졌던 앙주의 마거릿은 당연히 미래의 자신의 자녀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요크 공작의 발언을 용서할수 없었습니다. 또 당연히 보퍼트 가문 사람들도 있었죠. 이들의 왕위계승권리가 애매하다고 하지만 그들도 랭카스터 공작의 적자 아들의 후손이었기에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헨리 6세 역시 이에 대해서 반발했었죠.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할때 스스로 선택해야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헨리 6세가 자신과 직계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헨리 6세의 이부 동생들이었던 에드먼드 튜더와 재스퍼 튜더였습니다. 

 

튜더 형제는 헨리 6세의 어머니였던 카트린 드 발루아와 그녀의 기사중 한명이었던 오웬 튜더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카트린 드 발루아는 젊어서 과부가 되었으며, 섭정단들은 그녀가 어린 국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것을 우려해서 어린 국왕과 그녀를 떨어뜨려놓았죠. 이것은 아마도 카트린 드 발루아가 잉글랜드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곧 주변에서 낭만적 관계가 될 남자를 찾았으며 그가 바로 오웬 튜더였습니다.

 

오웬 튜더는 웨일스 출신의 기사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웨일스의 고위 귀족가문이었으며 이후 잉글랜드가 웨일스를 점령한 뒤에는 잉글랜드의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었습니다. 물론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의 상황때 이들은 리처드 2세를 지지했고 이때문에 헨리 4세에게 진압당했으며 영지도 상당부분 뺏기게 되죠. 이들은 반역죄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용서를 받았으며 오웬 튜더 역시 그런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이후 왕가의 기사가 되었으며 홀로된 왕비 곁에서 지내다가 왕비와 여러 아이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사실 왕비의 결혼은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했었는데 카트린 드 발루아와 오웬 튜더는 국왕의 허락을 받지 않았고 둘의 비밀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애매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카트린 드 발루아와 오웬 튜더의 관계가 발각된 뒤 둘은 각각 구금당했으며 아이들도 남에게 맡겨지게 됩니다. 이후 카트린 드 발루아는 사망했으며, 오웬 튜더는 감옥에 갇혔고 아이들은 겨우 동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길러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헨리 6세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헨리 6세는 살아남은 두 동생들인 에드먼드와 재스퍼를 궁정으로 데려와서 양육했으며 새아버지인 오웬 튜더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대해줬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이들은 헨리 6세에게 매우 충성적이었죠. 그리고 헨리 6세는 이런 동생들을 매우 아끼고 신뢰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생인 에드먼드 튜더에게 리치몬드 백작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요크 공작의 세력이 커지고 그의 왕위계승권리에 대한 요구가 점차 커지면서 헨리 6세는 자신의 이부 동생들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직계 혈연관계가 아닌 요크 공작은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직계 혈연 관계인 동생들은 왕위계승권리가 없었기에 아무리 충성스러워도 소용이 없었죠. 아마도 이런 상황은 동생들을 왕가의 계승권리를 가진 여성과 결혼시켜서 왕위계승후보자들을 좀더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떠올린 사람이 바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였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비록 결혼했다고 하지만 둘의 결혼은 "완성"된것이 아니었으며 서퍽 공작은 이미 죽었기에 이 결혼을 무효화 시킨다고 해도 반발할 세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레이디 마거릿은 엄청난 영지를 상속받은 상속녀였기에 당연히 그녀의 남편이 되는 것은 엄청난 재산을 얻을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레이디 마거릿은 서머셋 공작의 조카이기도 했었기에 서머셋 공작과 튜더 형제간의 연결고리도 강화시킬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헨리 6세는 이런 의도로 레이디 마거릿과 그녀의 어머니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