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에헤라디야 막 쭈욱 해봅시다...
아마 어쩌면 장미전쟁 내용은 파팍 줄일수도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전쟁이야기를 싫어하지 않습니까 -0-;;)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0) 정치적 상황 : 전운이 감돌다
1453년 2월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어머니와 함께 궁정으로 가서 국왕과 왕비를 알현합니다. 그리고 국왕은 이때 레이디 마거릿의 결혼을 무효화 시켰으며 이부동생과 레이디 마거릿의 결혼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전의 정치적 긴장감 때문에 자신의 이부동생의 지위를 확고히하려는 헨리 6세와 그 측근들의 계산이었을 것입니다.
결혼이 결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교회법상 결혼이 인정되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레이디 마거릿은 결혼할 나이가 될때까지 궁정에서 멀리 떨어져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으며, 아마도 평온한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이 평온한 나날을 보냈던것과 달리 정치적 상황은 점차 더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실패에 대해서 헨리 6세와 그의 측근인 권력자들에 대한 비난이 커져갔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서퍽 공작이 죽은 것이 좋은 예였죠. 그리고 서퍽 공작이 죽은뒤 권력자가 된 서머셋 공작에 대한 비난도 점차 더 커져갑니다. 이들을 공격하는 중심에는 요크 공작 리처드가 있었죠. 하지만 헨리 6세와 왕비였던 앙주의 마거릿은 서머셋 공작을 지지했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의 결혼이 무효화 되었던 1453년은 갈등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던 시기였죠. 특히 8월에 보르도가 프랑스측에 넘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왕은 갑작스럽게 병을 앓게 됩니다. 그의 증상은 외할아버지인 샤를 6세의 증상과 비슷했었습니다. 사람을 못알아보고 판단력이 떨어졌었죠. 현재 의사들은 정신적 질환이라고 여기지만 당대에는 보르도를 잃은 충격때문에 국왕이 너무나 상심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헨리 6세의 측근들에게 매우 경악할만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앙주의 마거릿은 결혼 8년만에 드디어 첫 아이를 임신했으며 곧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낳기도 전에 국왕의 상태가 나빠졌으며, 의회는 헨리 6세를 대리할 인물로 왕비나 왕비가 신뢰하는 서머셋 공작의 정적이었던 요크 공작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앙주의 마거릿은 남편인 국왕이 회복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정적이 권력을 얻은데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웨스트민스터로 가기로 합니다. 교회의 성역권에는 함부로 들어올수 없었기에 쉽게 말하는 그녀는 피난처를 찾은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거릿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후계자가 될 아들 에드워드를 낳게 됩니다.
비록 앙주의 마거릿이 아들을 낳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헨리 6세는 여전히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이때문에 왕비가 낳은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인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국왕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여전히 요크 공작과 그의 지지자들이 정권을 장악할수 있었으며, 정적이었던 서머셋 공작을 축출당하고 런던탑에 갇혔으며,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 역시 배제할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국왕이 아이를 인지하지 않았기에 아이가 국왕의 아이가 아니라 서머셋 공작의 아이라는 소문마저 파다하게 돌게 되죠.
아마 앙주의 마거릿에게는 이런 상황은 매우 치욕적인 상황으로 여겨졌을 듯합니다. 왕비로써의 권한도 배제당했을 뿐만 아니라 어렵게 낳은 자신의 아들의 존재마저도 부정당하는 모양새였을것이니까요. 아마 이후 앙주의 마거릿이 요크 공작에 대해서 엄청나게 적대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중 하나가 이런 것도 있었을듯합니다.
하지만 1454년 말 무렵 헨리 6세의 상태가 호전됩니다. 그는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알아봤고 평소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를 알아보게 되죠. 국왕은 아들을 인지했으며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앙주의 마거릿과 서머셋 공작이 다시 권력을 얻는 상황으로 바뀌죠.
1455년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게 됩니다. 이제 다시 권력을 잡은 서머셋 공작은 자신의 정적이었던 요크 공작을 배제하려했으며 위기감을 느낀 요크 공작은 결국 군사적 행동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1455년 5월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12살 생일이 되기 직전, 장미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전투가 일어나게 됩니다.
1455년 5월 22일 요크 공작의 군대와 서머셋 공작의 군대는 런던 북쪽에 있는 세인트 알반스라는 마을에서 맞닥들이게 됩니다. 두 진영이 싸운 결과 요크 공작의 군대가 승리했으며 서머셋 공작의 군대는 패배했었죠. 레이디 마거릿의 숙부였던 서머셋 공작은 이 전투에서 사망했으며 서머셋 공작측의 다른 인물들도 살해당했습니다. 요크 공작은 자신은 반역을 하지 않았으며 국왕에게 여전히 충성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전투에서 그의 군대는 국왕의 측근은 물론 국왕에게까지도 화살을 쏴서 상처를 입힐정도였습니다. 이 전투에는 국왕의 이부동생이었던 재스퍼 튜더도 있었는데 그 역시 활에 맞아서 상처를 입었었다고 합니다.
당시 요크 공작과 그 지지자들은 국왕을 사로잡았으며, 이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는듯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더 나아가서 요크 공작이 왕위를 이어받아야한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6세의 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가 국왕의 아들이 아니라 왕비과 바람을 펴서 낳은 아들이라거나 아니면 몰래 데려온 아들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죠. 이런 상황은 아마도 앙주의 마거릿이 자신의 남편과 아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칼을 갈도록 만들었을 듯합니다.
결국 이런 배경으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장미전쟁이 더욱더 치열해지게 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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