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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3) 세번째결혼
아이가 태어난 뒤, 레이디 마거릿은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이고 그중 하나가 바로 교회였습니다. 사실 중세시대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수녀원으로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중세에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수 있는 몇안되는 선택이었기에 만약 다시 결혼할 의지가 없다면 이러는 경우가 많았죠. 어쩌면 레이디 마거릿은 결혼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너무 어린 나이의 결혼은 그녀에게 너무나 심각한 영향을 미쳤을테니까요. 게다가 레이디 마거릿은 신앙심도 깊었었습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은 홀몸이 아니었고 이제 돌봐야할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없이 자랄 아들에 대해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야했죠. 그리고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은 레이디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에게 보호막이 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확실히 만들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세번재 결혼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시동생이었던 재스퍼 튜더였습니다. 재스퍼 튜더는 형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었고 이때문에 형수와 조카를 돌봐야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 역시 시동생의 보호아래 있으면서 그에게 의지했었죠. 아마 이런 상황은 두사람이 레이디 마거릿과 아들인 헨리를 보호해줄만한 사람을 찾게 만들었을 듯합니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이런 관계라면 미혼인 재스퍼 튜더가 형수와 결혼해도 되는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둘은 이미 brother-sister관계였고 아마 당대 도덕율로는 둘이 서로 결혼한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
재스퍼 튜더는 버킹엄 공작이었던 험프리 스태퍼드와 잘 알고 지냈었습니다. 버킹엄 공작은 헨리 6세에 충성스러운 신하였을뿐만 아니라 요크가문과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요크 가문과 그의 가문이 잘 지낸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며 아마도 레이디 마거릿이나 그녀의 아들인 헨리를 잘 보호해줄수 있다고 생각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버킹엄 공작이었던 험프리 스태퍼드 역시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 험프리의 어머니는 글로스터의 앨리스로 바로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글로스터 공작 우드스톡의 토마스의 딸이었습니다. 게다가 글로스터의 앨리스의 어머니인 엘리노어 드 분은 헨리 4세의 아내인 메리 드 분의 언니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내인 레이디 앤 네빌은 랄프 네빌과 조앤 보퍼트의 딸로 요크 공작 부인 시슬리 네빌의 언니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험프리는 장남이었던 험프리 스태퍼드를 서머셋 공작의 딸이자 레이디 마거릿의 사촌이었던 마거릿 보퍼트(...사촌간에 이름이 같으면 어쩌자는겁니까..ㅠ.ㅠ)와 결혼시켰었죠.
이런 관계는 버킹엄 공작이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던 원인이기도 할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이 될 사람은 버킹엄 공작의 둘째 아들이었던 헨리 스태퍼드였습니다. 당시 그는 30대였지만 결혼하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그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서 였다고 추정합니다. 그가 질병으로 고통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특히나 당대에 '성 안토니의 불St Anthony’s Fire' 이라고 불리는 질환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피부질환의 질종으로 맥각중독이나 단독 같은 병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그는 평생 심각하게 앓았으며 레이디 마거릿은 훗날 그와 함께 성 안토니에게 기도하는 등의 일을 했기도 하다고 합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헨리 스태퍼드를 남편감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나이가 많아서였습니다. 당대에 30대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자식을 낳기 힘들다고 여겨졌었으며 아마도 아이를 낳는것에 큰 충격을 받았던 레이디 마거릿은 다시 아이를 낳는것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렇기에 그를 선택했다고 추정할수 있습니다. 게다가 비록 형이 죽긴 했지만 조카가 있었기에 둘째아들인 헨리 스태퍼드가 후손을 얻어야한다는 압박감이 덜했던 것 역시 레이디 마거릿이 그를 선택한 원인일듯합니다.
버킹엄 공작쪽에서 레이디 마거릿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녀의 엄청난 상속 영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의 남편이 되면 그녀의 상속영지를 경영하고 관리하며 그 이익이 엄청날것이기 때문이었죠.
레이디 마거릿과 헨리 스태퍼드는 랭카스터 공작을 공통 조상으로 하는 친척관계였고 교회에서 근친으로 규정한 친척관계 내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때문에 둘의 결혼은 교회의 사면이 필요했었다고 합니다.
레이디 마거릿과 헨리 스태퍼드의 결혼은 양 가문의 이익과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레이디 마거릿은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스퍼 튜더와 함께 버킹엄 공작을 만났었고 자신의 결혼문제에 대해서 매듭지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죽은 남편인 에드먼드 튜더의 애도기간이 끝난뒤에 결혼하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1358년 1월 아들이 태어난지 1년이 될 무렵 레이디 마거릿은 헨리 스태퍼드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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