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보니까 크롬에서 구글이랑 유튜브를 쓰고 있는데, 요즘 계속 들을 쓰느라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해서 계속 검색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유튜브에서 갑자기 튜더 가문에 대한 동영상(영문)을 추천으로 올리거나 장미전쟁에 대한 다큐를 계속 추천하더라구요.
...이렇게 구글에 저의 정보가 팔려가는군요 -0-;;;;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19) 생각의 변화 : 왕위를 위하여
레이디 마거릿의 네번째 남편인 토마스 스탠리는 에드워드 4세의 최측근중 한명이었으며 글로스터 공작을 따라서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상황의 중대성을 알아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남편과 정치적인 정보를 공유했을 레이디 마거릿 역시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토마스 스탠리 역시 초기에는 에드워드 5세를 지지했었지만 글로스터 공작의 점차 과격한 행동에 몸을 사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토마스 스탠리 역시 잠시 감옥에 갔었지만 리처드 3세에 의해서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우드빌 가문에 대해서 무자비한 행동을 한 리처드의 모습에 아마 자신의 아들인 헨리 튜더의 안위를 걱정했을 것입니다. 리처드 3세가 경계해야할 왕위계승요구자들은 단순히 조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아마 이전에 에드워드 4세 때처럼 처신하기로 결정했을 듯합니다. 그녀는 이미 에드워드 4세에게 신임을 얻어서 아들에 대한 호의를 얻어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483년 7월 6일 리처드 3세의 대관식이 거행됩니다. 이때 레이디 마거릿과 그녀의 남편인 토마스 스탠리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토마스 스탠리가 리처드 3세의 측근이라는 것을 의미했으며 레이디 마거릿 역시 왕비인 앤 네빌의 궁정에서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의 생각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런던탑에서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이 사라지는 사건이었죠. 리처드 3세가 즉위하자 당연히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런던탑에 갇혀있는 왕자들을 구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금방 들통나게 되죠. 리처드 3세는 조카들을 런던탑 더 깊숙한 곳으로 이송합니다. 외부와 접촉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리고 이후 왕자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왕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대 사람들 대부분은 리처드가 조카들을 살해한것이라고 여겼었다고 합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이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의 적자 두 아들들이 사라졌으며 리처드 3세의 인기는 한없이 떨어지고 있었죠. 아마 이것은 레이디 마거릿이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음모를 꾸미게 되죠.
레이디 마거릿은 리처드 3세의 적대적 인물은 물론 주변 사람들마저도 포섭하려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두 사람을 포섭합니다. 바로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버킹엄 공작 헨리 스태퍼드였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포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리처드 3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연히 그를 끌어내리려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했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왕위계승권리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자신의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아들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에드워드 4세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에게 가장 우선적인 왕위계승권리가 있었으며 이것은 자신의 아들이 상대적으로 명분이 부족한 것을 메워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당연히 승락했습니다.
버킹엄 공작 헨리 스태퍼드를 포섭한것은 레이디 마거릿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헨리 스태퍼드는 리처드 3세의 최측근이었지만, 리처드 3세가 그를 중용하지 않았기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레이디 마거릿은 아마 헨리 스태퍼드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믿는 또하나는 바로 웨일스였습니다. 튜더 가문은 웨일스 출신이었으며, 재스퍼 튜더는 웨일스에서 꽤나 영향력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로 온다면 당연히 웨일스에서도 호응할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1483년 10월 버킹엄 공작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지만 상황은 매우 나빴는데 특히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에 상륙하는 것이 늦어지는 바람에 더욱더 문제가 되었습니다. 버킹엄 공작의 반란은 바로 진압되었으며 헨리 튜더는 서둘러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이 무사히 프랑스로 돌아간것에 안심을 했을 것입니다만, 그녀 자신의 안위는 장담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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