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79)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니콜라이 2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20. 12.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혁명이야기 대충 넘어가서 두개로 끝냅니다.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79)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니콜라이 2세의 딸 (두번째)

 

러시아의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Tatiana Nikolaevna of Russia 

Tatiana Nikolaevna Romanova;

Великая Княжна Татьяна Николаевна

(10 June [O.S. 29 May] 1897– 17 July 1918) 

 

 

타티야나는 다른 가족들처럼 라스푸틴에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처럼 그를 성인으로 여겼었죠. 하지만 라스푸틴은 다큰 여대공들의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었으며 이것은 스캔들로 발전할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니콜라이 2세가 라스푸틴에게 여대공들의 방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면서 끝났었지만 아마도 이것은 훗날 여대공들에 대한 악의적 소문이 퍼지는 이야기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타티야나는 라스푸틴이 죽었을때 다른 가족들처럼 매우 충격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황후와 함께 라스푸틴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타티야나는 러시아의 여대공으로 부모의 보호아래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한 연대의 명예연대장이 되었는데 그 역할을 매우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연대 군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사실 군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한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요트에서 군인중 한명이 언니인 올가에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사진을 줬을때 저속한 행동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2세와 타티야나 그리고 군인들, 니콜라이 2세 옆에 앉아있는 젊은 군복입은 사람이 타티야나입니다.

 

타티야나는 불안정한 러시아에서 살고 있었으며 이것은 타티야나와 다른 가족들의 위협요소이기도 했었습니다. 타티야나는 언니인 올가와 함께 정부관료가 암살당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었는데 이에 매우 큰 충격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1차대전이 일어나면서 정치적으로 더 혼란해졌지만 타티야나는 언니 올가보다는 좀더 나이가 어렸으며 또 언니보다 좀덜 정치적이었지만 애국심은 누구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니 올가처럼 독일인에 대한 적개심을 이해하기도 했었죠. 타티야나는 언니 올가와 어머니 알렉산드라와 함께 간호사로 부상당한 병사를 돌봐줬으며 또 자선단체를 조직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언니 올가와 함께 간호사로 일할때의 타티야나

 

10대 후반이 된 타티야나는 다친 병사들을 돌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호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타티야나는 여대공이었기에 자신의 신분에 맞는 사람과 결혼해야했으며 이때문에 무슨 스캔들이 나는 것을 걱정해야했었습니다. 그랬지만 호감이 생기는 것 역시 어쩔수 없었던듯합니다. 타티야나는 드미트리 말라마라는 부상당한 병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여대공에게 개를 선물했었으며 여대공은 이 개를 아꼈었다고 합니다. 이 개가 죽자 다른 개를 다시 선물했는데 이 다른 개는 타티야나가 예카테린부르크까지 데려갔으며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규율을 중시했었던 타티야나는 자신의 행동이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것을 우려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니콜라이 2세와 함께 있는 타티야나

 

물론 타티야나에게 당연히 혼담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웠다고 알려져있었으며 러시아 여대공이었기에 혼담을 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르비아의 국왕이었던 페타르 1세는 자신의 아들인 알렉산다르를 위해서 러시아 여대공과의혼담을 원했다고 합니다. 혼기가 되었던 올가나 타티야나 둘중 한명을 며느리로 맞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니콜라이 2세는 딸들이 허락한다면 결혼 시키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다르는 타티야나와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은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었지만 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것이 허사가 되죠.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다르 1세

 

1917년 혁명이 일어난뒤 가족들은 연금을 당했으며 타티야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가족들은 매우 힘들어했었는데 퇴위한 아버지와 자책하는 어머니 그리고 여전히 아픈 남동생을 보면서 타티야나는 언니 올가처럼 모두가 힘을 내길 바라고 부모에게 용기를 붇돋아주고 동생을 돌보는 일들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으며 결국 1918년 7월 17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이 되어서야 시신이 발굴이 되어서 안장되게 됩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둘의 다섯 자녀들 1913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