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81)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2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20. 12.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확실히 혁명이랑 라스푸틴에 대해서 빼니까 많이 없네요

하긴 죽은 나이를 생각해보면...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81)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2세의 딸 (두번째)

 

러시아의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Maria Nikolaevna of Russia 

Maria Nikolaevna Romanova

Russian: Великая Княжна Мария Николаевна,

(26 June [O.S. 14 June] 1899 – 17 July 1918) 

 

마리야는 가족들 누구에게서도 인정받는 착한 성품이었습니다. 아버지인 니콜라이 2세는 딸이 너무나 착해서 날개가 자라나서 천국으로 가버릴까봐 걱정스럽다고 할정도였죠. 하지만 이것은 아마도 네딸중 셋쨋딸이라는 마리야의 위치가 불안해서였을 듯합니다. 위로는 언니들이 있었고 밑으로는 동생이 있었기에 자신이 가장 소외받는 존재일수 있다는 것을 아마 본능적으로 느낀듯합니다.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마리야는 기꺼이 남들에게 양보하는 사람으로 남았던 것이죠. 언니들과 여동생은 물론 가족 모두가 제일로 아꼈던 알렉세이에게도 매우 잘 대해줬었습니다.

 

마리야, 아나스타샤 그리고 알렉세이와 함께 있는 알렉산드라 황후

 

이런 마리야의 성격은 자매들에게 이용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동생인 아나스타샤에게 늘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아나스타샤가 남들에게 화를 낼때면 마리야는 늘 그에 대해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또 자매들은 이런 마리야의 성격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올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마리야를 부추겨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리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마리야는 언니가 뜻하는대로 행동했었습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는 딸의 이런 성격을 걱정스러워합니다. 왜냐면 마리야가 호의를 보여줘도 마리야에게 호의를 되돌려 주지 않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이에 딸이 상처받을까봐 걱정스러웠던 것이죠. 그리고 결국 딸에게 충고하는 편지도 썼었다고 합니다.

 

아마 마리야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들게 노력했을 것이며 이것은 마리야가 감정기복을 가지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늘 착한 사람으로 사는것은 감정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소모에 지치면 마리야가 퉁명스러워지거나 짜증내거나 게을러지는등의 형태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네 딸들과 함께 있는 니콜라이 2세

 

물론 이런일은 그리 오래지 않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지 않았으며 가족들은 대부분 마리야를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야의 사촌이었던 바텐베르크의 루이스(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이런 마리야를 호의를 가지고 기억했는데 후에 그가 죽은뒤 그의 서재에는 마리야의 사진이 놓여져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헤센 대공가에서, 저기 맨 왼쪽이 마리야인듯합니다. 맨 오른쪽은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입니다. (금발머리 여자아이들은 앨리스의 딸들로 필립공 누나들이고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아이는 알렉세이입니다. 나머지 두 남자아이는 헤센 대공의 아들들입니다. 제일 큰 소녀는 올가) 루이스는 이렇게 어린시절부터 사촌이었던 러시아 여대공들을 만났었습니다.

 

마리야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품이었으며 군인들에게도 호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리야도 언니들처럼 연대 명예 연대장이 되었으며 열심히 활동했었습니다. 이때문에 마리야는 자신이 여대공이 아니었다면 군인과 결혼해서 많은 아이들을 낳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마리야는 언니들보다 훨씬 어렸기에 언니들과 달리 본격적으로 혼담이 나오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1915년 루마니아의 카롤과 올가의 혼담이 잘 되지 않았을때, 루마니아쪽에서는 마리야를 신붓감으로 거론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니콜라이 2세는 16살인 딸 마리야가 너무 어리다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군복 차림의 마리야

 

마리야는 1차대전이 일어났을때 나이가 많지 않았기에 언니들처럼 간호사로 일할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인 아나스타샤와 함께 부상병들의 기분을 북돋아주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또 군업무를 보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도 했는데 마리야는 그곳에서 장교인 니콜라이 데멘코프를  만났으며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거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농담으로 데멘코프 부인이라고 서명해서 보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환자들과 함께 있는 마리야와 아나스타샤

 

하지만 1917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마리야 역시 가족들과 함께 연금당했으며 결국 1918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살해당했었습니다.

 

1990년대 황실 가족의 유해가 발굴되었을때, 여대공중 한명과 알렉세이의 시신을 찾지 못햇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에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를 들면서 아나스타샤가 시신을 찾지 못한 여대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측에서는 시신을 못찾은 여대공이 아나스타샤가 아니라 마리야라고 발표했고 이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논쟁은 2007년 남은 두구의 시신이 발굴되고 DNA검사가 발표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더하기

...--;; 러시아 정교회측에서 DNA검사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봤었는데 2015년까지도 말이 계속 나왔었네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볼까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