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렇게 중앙 프랑크 왕국이 끝납니다. 의외로 짧죠.
네 다음으로는 동 프랑크 왕국할텐데 아마도 동 프랑크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관을 받은 오토대제까지 할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발트라다는 왕비로 넣을까말까하다가 그냥 넣습니다만 사실 정부였던 여성이라서 말입니다.
중앙 프랑크 왕국의 왕비들...(4)발트라다 : 로타리우스의 아내
Waldrada
발트라다의 출신은 정확히 알수 없다고 합니다. 19세기 한 프랑스 작가는 그녀가 고귀한 집안의 출신으로 티에르 주교의 누이이자 쾰른 대주교의 조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너무나 빈약했기에 믿을수는 없는 주장이라고 합니다 또 10세기경의 기록에서 발트라다가 노르드가우의 백작과 친척관계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만 이 역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이야기는 발트라다의 아들인 위그의 이름입니다. 위그라는 이름은 카롤링거 가문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알사스 쪽의 강력한 가문이었던 에티코니드 가문에서 많이 쓰는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발트라다가 이 가문쪽과 연결된 사람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들인 위그는 아버지로부터 알사스 공작 지위를 얻습니다.)
855년 로타리우스 2세는 테우트베르가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목적의 정략결혼이었는데 이때 이미 로타리우스 2세는 발트라다를 정부로 들였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테우트베르가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로타리우스2세는 그녀를 쫓아내고 발트라다와 정식으로 결혼하길 바라게 됩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대서 아내를 쫓아내려시도했고 결국 형인 황제 루도비쿠스 2세의 지지를 얻어서 아내와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862년 발트라다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합니다. 하지만 테우트베르가는 서프랑크 왕국으로 도망쳤으며 교황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호소합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로타리우스 2세가 궁지에 몰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발트라다는 866년 파문당하기까지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로타리우스 2세는 다시 테우트베르가를 불러들이려하죠.
하지만 테우트베르가는 이제 더이상 로타리우스 2세와 함께하려하지 않았고 그와 헤어지길 바랍니다. 로타리우스 2세는 이 소식을 가지고 교황을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길에 사망합니다. 이때문에 발트라다의 결혼은 아마도 애매하게 되었을 것이며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적자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영지는 로타리우스 2세의 두 숙부들이었던 루도비쿠스 게르마니구스와 카롤루스 2세가 메르센 조약을 통해서 나눠갖게 됩니다.
발트라다는 남편이 죽은뒤 수녀원으로 은퇴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발트라다의 딸인 베르타는 아를르의 테오발드와 결혼했는데 그는 로타리우스 2세의 왕비였던 테우트베르가의 조카였다고 합니다. =-=;;;;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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