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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번외편10. 동프랑크 왕국

엘아라 2020. 7.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스의 왕비들...번외편10. 동프랑크 왕국

 

황제인 루이 르 피우스가 죽고 난뒤 그의 세 아들들은 분쟁을 겪었고 왕국을 세개로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그중  동프랑크 왕국은 로타르의 동생이자 샤를의 형이었던 루이(루도비쿠스 게르마니쿠스)가 물려받게 되죠. 

 

동프랑크 왕국은 현재의 독일과 인근 지역이라고 할수 있는데 주로 게르만어와 슬라브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사실 동프랑크는 당시 프랑크 왕국의 외곽지역이라고 할수 있었으며 이때문에 당대 글에서는 동프랑크 사람들에 대해서 이질적인 외모와 언어를 쓰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이후 메르센 조약을 통해서 동프랑크 왕국은 현재 독일 지역의 기본이 되는 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베르됭 조약이후 동프랑크 왕국

 

루도비쿠스 게르마니쿠스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에 따라 루이는 이 세 아들들에게 왕국을 분할해서 상속해주죠. 카를로마니쿠스(카를로만)은 바이에른 왕국을, 루도비쿠스 3세(루드비히3세)는 작센과 프랑코니아와 튀링기아를 그리고 막내인 카를루스 3세는 스바비아와 알레마니아 등을 물려받게 되죠. 하지만 이 영지들은 막내인 카롤루스3세가 형들로부터 모두 물려받게 되죠. 그리고 카를루스 3세는 숙부였던 카를루스 2세(서프랑크를 물려받은 샤를)의 뒤를 이어서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되죠.

 

황제 카를루스 3세, 루도비쿠스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하지만 카롤루스 3세는 정식 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고 첩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정식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도리어 많은 사람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게다가 불만을 품고 그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카롤루스 3세는 퇴위해야했으며 통합되었던 영지는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분할되게 됩니다. 

 

이중 동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3세의 형이었던 카를로마니쿠스의 아들인 아르눌푸스(아르눌프)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아르눌푸스는 카를로마니쿠스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적자 지위가 애매했기에 아마도 영지 상속 문제가 모호했을 듯합니다. 하지만 세력을 모았고 결국 그는 숙부로부터 동프랑크 왕국의 왕위를 얻게 되죠.

 

아르눌프, 동프랑크의 국왕, 로마의 황제

 

아르눌푸스에게는 세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두 아들은 적자가 아니었습니다. 적자였던 루도비쿠스 4세는 나중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때문에 아르눌푸스 역시 후계자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귀족들은 적자가 아닌 그의 아들들의 계승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고 아르눌프스가 이전에 두 아들들에게 물려주어서 나라를 통치하게 하려했던 생각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었죠.

 

후에 아르눌푸스에게 적자인 루도비쿠스 4세가 태어나면서 귀족들은 모두 루도비쿠스 4세의 상속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7살의 나이로 즉위한 루도비쿠스 4세는 힘있는 군주가 아니었죠. 게다가 몸도 허약했었는데 결국 18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루도비쿠스4세, 카롤링거의 마지막 동프랑크 국왕

 

루도비쿠스 4세가 죽은뒤 동프랑크에서 카롤링거 가문은 단절되게 됩니다. 그리고 동프랑크의 국왕 지위는 귀족들이 뽑는 선출직으로 바뀌게 되죠. 루도비쿠스 4세가 죽은뒤 프랑코니아 공작이었던 콘라드(콘라두스)가 동프랑크의 국왕이 되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서는 작센의 공작이었던 하인리히(헨리쿠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이 하인리히의 아들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하는 오토 대제입니다. 이후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이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