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64) 마리야 파블로브나 : 알렉산드르 2세의 손녀 (네번째)

엘아라 2020. 7.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너무 일이 많아요 ㅠ.ㅠ

아 이렇게 바쁘게 지냈던 적이 언제던가..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64) 마리야 파블로브나 : 알렉산드르 2세의 손녀 (네번째)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Maria Pavlovna the Younger,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Мария Павловна)

(18 April [O.S. 6 April] 1890 – 13 December 1958),

 

 

1907년 부활절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빌헬름 왕자가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는 곧 17살이 되지 않은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만나게 됩니다. 마리야 여대공은 빌헬름 왕자에게 호의를 갖게 됩니다. 

 

사실 이런 과정은 왕족들이 선을 보는 과정이었으며 남자나 여자쪽에서 특별히 이상이 없다면 그대로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엘라 대공비가 마리야 여대공을 위해 찾은 신랑감이었죠. 빌헬름 왕자는 곧 청혼했으며, 마리야는 이에 대해서 엘라에게 이야기합니다. 엘라는 당연히 서둘러 결정하라고 이야기했었죠. 그리고 마리야는 결혼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1907년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됩니다.

 

루마니아 수상과 함께 있는 빌헬름 왕자

 

사실 후에 마리야는 백모인 엘라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서둘러 결혼시킨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마도 고모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이 그랬던것처럼 마리야 역시 아마도 먼나먼 나라에서 호감가는 남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면 약혼 사진등을 봐도 마리야의 표정이 전혀다르며  약혼기간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에서 역시 앞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죠. 또 훗날 마리야가 멀리 남미로 떠나서 살았던 것 역시 이런 감정의 연장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야와 드미트리 그리고 빌헬름

 

하지만 겨우 17살이었으며 러시아에서만 지냈던 마리야에게 외국으로 결혼하러 간다는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리야의 아버지인 파벨 대공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마리야가 결혼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계기가 됩니다. 훗날 마리야는 자신이 빌헬름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17살의 마리야는 빌헬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때문에 그녀는 엘라의 여동생인 이레네가 자신을 설득했을때 결혼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지필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908년 5월 마리야는 차르스코예 슬로에서 스웨덴의 빌헬름 왕자와 결혼합니다.

 

마리야와 빌헬름의 결혼 사진

 

엘라가 빌헬름 왕자를 마리야의 남편감으로 고른 가장 큰 이유는 빌헬름 왕자가 매우 온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온화한 그가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마리야를 좀더 온화하게 만들고 평온한 삶을 살게 할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마리야와 빌헬름은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결혼했으며 둘은 서로가 너무 달랐기에 결혼생활의 불안으로 작용합니다.

 

마리야와 빌헬름이 결혼식후 스웨덴으로 왔을때 국민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특히 마리야는 스웨덴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했었으며 매우 활발한 성격이었기에 국민들에게 호의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야는 스웨덴으로 돌아온 직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9년 5월 아들인 레나르트를 낳게 됩니다.

 

증조할머니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와 외할머니인 그리스의 올가 왕비와 아들 레나르트와 함께 있는 마리야 여대공, 마리야는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대공비의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야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