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나바라의 여왕들에 대한 책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책 값이 흑흑흑..10만원이 넘더라구요. ebook도 오만원..ㅠ.ㅠ
사고 싶은 책은 많지만 돈이 없어서 슬퍼요...흑
흑흑흑..블란카때쯤에 카스티야-아라곤-시칠리아-나바라가 왕위계승문제로 혼란스러워서 말입니다.
(...가톨릭 공동군주가 결혼해서 그 혼란함을 정리해주시는...-0-;;;)
나바라의 인판타들...(34) 나바라의 블란카 : 카를로스 3세의 딸 (첫번째)
나바라의 블란카
시칠리아의 왕비
나바라의 여왕
Blanche I
(6 July 1387 – 1 April 1441)
나바라의 블란카는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3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둘째딸인지 셋째딸인지에 대해서는 좀 애매한 감이 있는듯한데 블란카가 언니인 후아나가 약혼했었던 시칠리아의 국왕 마르티노 1세와 결혼했었기에 블란카가 후아나의 바로 밑의 동생이라고 여겨지는듯합니다. 하지만 다른 자료에서는 블란카가 둘째딸이 아니고 셋째딸이며 블란카의 여동생으로 여겨졌던 마리아가 둘째딸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점은 블란카가 언니인 후아나 대신 시칠리아의 국왕과 결혼했으며 큰 언니인 후아나가 죽은 시점에서 그녀가 후아나 다음으로 왕위계승권리를 가졌었다는 점입니다. (마리아는 1406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1402년 15살이었던 블란카는 28살이었던 시칠리아의 국왕 마르티노 1세와 결혼합니다. 사실 1401년에 블란카의 언니인 후아나가 마르티노 1세와 약혼했었지만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서 남성왕위계승자가 부족했고 후아나가 왕위계승자로 부상하면서 후아나는 나바라에서 통치해야했기에 프랑스쪽의 귀족과 결혼을 했으며, 시칠리아와의 혼담은 블란카가 언니 대신 시집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블란카가 시집간 시칠리아는 사실 매우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왕국은 11세기 이탈리아쪽으로 진출한 노르만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12세기에 성립된 왕국으로 왕국의 영역은 현재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남부 지역이 영지였습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어머니를 통해서 시칠리아 왕국을 상속받았었으며 어린시절부터 시칠리아에서 성장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 문제는 매우 복잡했고 결국 시칠리아 왕국의 상속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다툼을 했으며 심지어 교황과의 갈등때문에 프랑스 카페 왕가의 후손인 앙주 공작이 왕위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리를 중심으로하는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 섬을 중심으로 하는 시칠리아 왕국으로 다시 분리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왕국과 시칠리를 중심으로 하는 왕국은 서로 자신들이 나머지 지역을 통치해야한다고 주장했었으며 이것은 매우 복잡한 상속문제를 야기했었습니다.
블란카의 남편인 마르티노 역시 아라곤의 국왕 마르틴 1세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때 시칠리아의 왕위는 사실 페데리코 3세의 딸인 마리아가 물려받게 됩니다. 아마도 아라곤 왕가에서는 마리아가 다른 가문으로 시집가서 시칠리아 왕위가 아라곤의 왕가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며 이에 아라곤의 왕자였던 마르티노가 마리아와 결혼해서 시칠리아의 국왕 마르티노 1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르티노 1세는 첫번째 아내인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었지만 그 아들은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했었으며 마리아 역시 일찍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블란카와 재혼한 것이기에 그는 역시 후계자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는 아라곤의 왕위계승자이기도 했었는데 이때쯤 아라곤의 남성 직계 왕위계승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었습니다. 블란카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마르티노를 낳습니다만 이 아이는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블란카는 남편이 시칠리아를 비운 사이 섭정으로 시칠리아를 통치했었습니다. 그리고 1409년 남편인 마르티노 1세가 죽으면서 시칠리아의 왕위계승문제는 더욱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시칠리아 왕가는 아라곤 왕가의 분가였기에 시칠리아의 마르티노 1세가 죽자 왕위는 그의 아버지였던 아라곤의 국왕 마르티노에게 돌아가게 되죠. 블란카의 시아버지였던 아라곤의 국왕은 블란카에게 여전히 시칠리아 왕국의 섭정으로 일하도록 했었고 블란카는 시칠리아에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1410년 블란카의 시아버지였던 아라곤의 국왕 마르티노 1세마저 사망하자 상황은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시칠리아 왕국 사람들은 아라곤 왕국에 종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었으며, 블란카는 시칠리아 왕국에서 매우 인기있는 섭정이었기에 블란카를 중심으로 시칠리아 왕국은 아라곤 왕국과 결별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아라곤 왕국은 당연히 그것을 원치 않았었죠. 일단 아라곤 왕국에서 왕위계승을 두고 분쟁이 있었으며 결국 아라곤의 마르티노 1세의 여동생인 레오노르의 아들이었던 카스티야의 페르난도가 외삼촌의 뒤를 이어 아라곤의 국왕이 되었으며 또 그는 결국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마저도 차지합니다. 페르난도가 왕위를 얻게 되자 블란카는 시칠리아에서 모든 지위를 사임하고는 1415년 고향인 나바라로 돌아왔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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