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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31) 나바라의 후아나 : 카를로스 2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20. 5. 19. 06:00

 

 

나바라의 후아나

브르타뉴 공작부인

잉글랜드의 왕비

Joan of NavarreJoanna 

(

c.

 1370 – 10 June 1437) 

 

나바라의 후아나는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2세와 그의 아내이자 프랑스의 공주였던 잔 드 발루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아나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2세는 프랑스 내에서의 영지에 대한 권한 확대는 물론 심지어는 프랑스 왕위계승에 대해서도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카를로스 2세의 장인인 장2세는 카를로스 2세와 딸을 결혼시키므로써 그의 야망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장 2세와 함께 있는 카를로스 2세

 

나바라의 후아나는 1370년 나바라의 수도 팜플로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후아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그녀는 1386년 브르타뉴 공작이었던 장과 결혼하면서부터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브르타뉴 공작 장(또는 존)은 사촌이었던 잔 드 팡티에브르와의 복잡한 브르타뉴 계승문제에 얽혀있었는데 그는 잉글랜드와의 관계를 통해서 잉글랜드의 지지를 얻어서 브르타뉴지역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첫번째 아내는 에드워드 3세의 딸인 메리였으며, 두번째 부인은 레이디 조앤 홀랜드로 그녀의어머니는 바로 에드워드 1세의 손녀였던 켄트의 조앤으로 조앤은 후에 흑태자 에드워드와 재혼했었기에 조앤 홀랜드의 의붓아버지가 흑태자 에드워드였으며 이복남동생이 바로 리처드 2세였습니다. 하지만 브르타뉴 공작 장은 두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아이를 얻지 못했었으며, 결국 30살 가량 어린 세번째 아내인 나바라의 후아나와의 사이에서 아홉명의 자녀를 얻었다고합니다.

 

브르타뉴 공작 장과 나바라의 후아나의 결혼

 

1399년 후아나의 남편인 브르타뉴 공작 장이 사망했고 후아나의 아들인 장이 브르타뉴 공작이 됩니다. 하지만 장은 미성년자였기에 어머니였던 후아나가 아들의 섭정이 되죠. 하지만 후아나는 몇년 지나지 않아서 한 남자의 청혼을 받게 됩니다. 바로 당시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던 헨리 4세였습니다.

재미난 것은 헨리 4세가 후아나에게 청혼한것은 정략결혼이라기 보다는 애정관계에 기인한것이었다고 합니다.

 

헨리 4세는 아직 국왕이 되기전 사촌이자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와 갈등관계였었습니다. 결국 리처드 2세는 헨리 4세를 잉글랜드에서 추방했었으며 헨리 4세는 1398년에서 1399년 사이에 브르타뉴 공작령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때 헨리 4세는 후아나를 만났었으며 둘은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호감으로 발전했었다고 합니다. 1399년 헨리 4세는 잉글랜드로 돌아가서 리처드 2세를 물리친후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해에 후아나는 과부가 되었죠. 

 

헨리 4세

 

헨리 4세는 후아나가 과부가 되자 서둘러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됩니다. 그의 첫아내인 메리 드 분은 이미 1394년 사망했었죠. 후아나는 헨리 4세의 청혼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만 그녀의 자녀들이나 공작령에 대한 걱정을 했기에 결혼을 잠시 연기하기로 합니다. 왜냐면 그녀가 잉글랜드 국왕과 결혼할 경우 그녀는 아들의 섭정 역할을 할수 없었으며, 또 그녀가 결혼한다고해서 이미 브르타뉴 공작이었던 아들을 데려갈수 없었죠. 게다가 그녀의 아들은 프랑스 공주와 결혼한 상황이었기에 자칫하면 프랑스 국왕이 아들이나 브르타뉴 공작령에 간섭할수도 있는 문제였기도 합니다. 

 

결혼을 연기하는 동안 그녀는 아들의 섭정이 될만한 강력한 세력을 찾았습니다. 바로 부르고뉴 공작이었죠. 그녀는 부르고뉴 공작에게 아들들의 후견을 부탁했으며, 브르타뉴 지방의 권리와 법률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한 부르고뉴 공작에게 아들의 섭정권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헨리 4세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딸들을 데리고 잉글랜드로 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