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딸들이 많네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28) 나바라의 아그네스 : 후아나 2세의 딸
나바라의 아그네스
푸아 백작부인
Agnès of Navarre
(French: Agnès d'Évreux)
(1334 – 1396)
나바라의 아그네스는 나바라의 여왕인 후아나와 그녀의 남편인 펠리페 3세의 넷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기에 아마도 아그네스는 그렇게 중요한 후계자등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잠시만 나바라에 머물렀고 평생을 프랑스에서 지낸 어머니 후아나 2세와 함께 프랑스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아그네스의 부모
펠리페3세와 후아나 2세
아그네스는 1349년 푸아 백작이었던 가스통 3세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오래전에 결정된것으로 1335년 나바라와 카스티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때 푸아 백작이 나바라를 지원해줬으며 이에 아그네스의 어머니인 후아나 2세와 가스통 3세의 어머니가 이 결혼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아그네스는 14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작곡가였던 기욤 드 마쇼와 결혼전에 연애관계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시에 나오는 "연인"이 아그네스라고 주장하면서 그녀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것도 이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이 불행했던 것은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푸아 백작 가스통 3세
시작은 1349년 아그네스의 어머니인 후아나 2세가 죽었을때, 아그네스에게 주기로 했던 혼수를 다 주지 않은것에서 시작합니다. 아그네스의 오빠였던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는 동생에게 주기로 한 혼수를 다 주지 않은 것은 물론 매제에게 지불해야할 몸값마저 주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은 가스통 3세가 아내인 아그네스와 불화하는 원인이 됩니다. 특히 1362년 가스통 3세는 아들을 낳은 아내를 나바라로 보내서 기어이 몸값을 받아내려했는데 카를로스 2세는 대놓고 몸값을 주지 않으려했었죠. 이렇게 되자 아그네스는 프랑스로 돌아갈수가 없었고 그대로 팜플로나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언니인 블랑카가 프랑스 왕비였었기에 아그네스는 프랑스로 돌아올수는 있었을 듯합니다만 남편과는 거의 접점이 없거나 아니면 사이가 아주 나빴을 것입니다. 특히 그녀의 아들인 가스통은 아마도 이런 부모의 불화에 대해서 아버지를 원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는 가스통 3세와 그의 아들인 가스통의 불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스통 3세의 아들인 가스통은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외삼촌인 카를로스 2세에게 속아서 독이든 주머니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독주머니는 이복형제에게 발견되었고 아버지인 가스통 3세는 격분해서 아들을 감옥에 가두고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그네스의 오빠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
아그네스와 가스통 3세 사이에서는 유일하게 가스통이라는 아들만 살아남아서 성인으로 성장했고 그는 1382년 아버지보다먼저 사망했습니다. 아마도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맞는다면 결국 부모의 불화때문에 아들이 죽게되는 원인이 되는것입니다. 어쨌든 이 적자 아들이 죽은뒤 가스통 3세는 후계자가 없었고 푸아 백작령은 친척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아그네스는 거의 남은 생을 나바라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쓰고있는글들 > 화요일 : 에스파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바라의 인판타들...(31) 나바라의 후아나 : 카를로스 2세의 딸 (첫번째) (0) | 2020.05.19 |
---|---|
나바라의 인판타들...(30) 나바라의 마리아 : 카를로스 2세의 딸 (0) | 2020.05.12 |
나바라의 인판타들...(29) 나바라의 후아나 : 후아나 2세의 딸 (0) | 2020.05.05 |
나바라의 인판타들...(27) 나바라의 블란카 : 후아나 2세의 딸 (0) | 2020.04.21 |
나바라의 인판타들...(26) 나바라의 마리아 : 후아나 2세의 딸 (0) | 2020.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