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스코틀랜드 사는 잘 몰라서 제가 읽어가면서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져요..ㅠ.ㅠ
유럽의 통치 가문들...(21) 스튜어트 가문 : 스코틀랜드 왕가 (두번째)
제임스 3세가 죽은후 아버지와 적대하던 아들 제임스가 제임스 4세로 즉위합니다. 비록 그가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아버지와의 전투이후 죽은것이기에 제임스 4세는 즉위후 아버지를 죽였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스스로도 죄책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그는 이 죄를 참회하기 위해 사순절에 고행을 했었으다고 합니다. 제임스 4세는 여러가지로 아버지보다는 훨씬 더 인기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처럼 무조건적으로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맺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잉글랜드의 내정이 불안정한 상황을 빌미로 잉글랜드를 공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내의 상황이 안정이 되면서 잉글랜드와의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때 평화협정을 체결했었죠. 헨리 7세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의 딸인 마거릿 튜더를 아내로 맞기도 합니다. 또 전통적인 동맹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강화하기도 햇습니다. 내정 역시 세력을 키우던 귀족들을 압박하는 정책을 펴서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었죠.
하지만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제임스 4세는 결국 프랑스를 지지했고 처남이었던 헨리 8세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만 결국 전사하게 됩니다.
제임스 4세가 전사했을때 그의 후계자였던 제임스 5세는 겨우 2살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것은 다시 한번 섭정단이 나라를 꾸려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어린 국왕을 통해서 나라를 통치하려던 여러 세력들이 경합을 하게 됩니다.특히 새아버지였던 앵거스 백작인 아치볼드 더글라스는 제임스 5세를 자신의 손안에 넣고 전권을 휘둘렀으며 국왕은 그의 포로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5세는 간신히 그에게서 도망쳤고 이후 국왕으로 전권을 장악하고 앵거스 백작 가문을 추방했었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종교개혁이 한참이었고 스코틀랜드에서도 잉글랜드는 물론 다른 유럽 지역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도들이 등장합니다만 제임스 5세는 이들을 단호하게 이단으로 판단했으며 심지어 이단으로 화형을 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5세는 잉글랜드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프랑스와의 동맹을 강화하려했습니다. 그는 프랑수아 1세의 딸인 마들렌과 결혼하길 원했고 결국 결혼했습니다만 마들렌은 건강이 매우 나빴었기에 결혼 얼마뒤 사망합니다. 그후에는 다시 프랑스 출신의 마리 드 기즈와 결혼했었죠.
제임스 5세는 1542년 잉글랜드와의 전투후에 사망합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전투에 패배한 뒤 실망감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일부에서는 계속해서 열이 나고 있었기에 병을 앓고 있었을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제임스 5세는 유일한 적자이자 딸인 메리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난뒤 사망했었습니다.
태어난지 6일만에 아버지가 죽어서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 메리는 당연히 섭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섭정은 그녀의 어머니였던 기즈의 마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죠.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를 원했었기에 메리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 잉글랜드파 귀족들은 이를 지지했었죠. 이에 마리 드 기즈는 잉글랜드가 아닌 프랑스와 손을 잡았으며 메리는 5살때 앙리 2세의 장남인 도팽 프랑수아의 약혼녀로 프랑스로 보내지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궁정에서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도팽의 약혼녀이며 장래 프랑스의 왕비로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프랑스 궁정에서는 모두가 메리를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인 프랑수아와 결혼하고 나서 그가 프랑스 국왕이 되자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프랑수아 2세는 후계자없이 사망했으며 이제 궁정의 중심은 메리가 아니라 메리의 시동생인 샤를9세에게로 옮겨가게 되죠.
결국 메리는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처음에 여왕은 매우 환영받게 됩니다. 그녀는 곧 친척이었던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합니다 하지만 부부사이는 곧 벌어지게 되죠. 둘 사이에서는 아들인 제임스가 태어납니다만 곧 복잡한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메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단리경이 있던 집이 폭발했고 화재가 나서 단리경이 사망합니다. 그런데 단리경의 시신은 집밖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화재로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죽인것이라는 의혹이 들었으며 그 중심에는 여왕이 총애하던 신하인 보스웰 백작이 있었죠. 게다가 단리경이 죽은 얼마뒤 보스웰 백작은 여왕을 납치했고, 보스웰 백작은 여왕의 명예를 위해서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것은 메리나 보스웰 백작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것으로 메리가 자신의 애인과 짜고 남편을 죽이고 그와 결혼한것처럼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결국 보스웰 백작이 북유럽으로 망명하고, 메리는 잉글랜드로 망명하게 했습니다.왕위는 메리의 젖먹이 아들인 제임스에게 돌아갔고 그는 제임스 6세가 되죠.
메리는 오래도록 잉글랜드에 머물렀지만 결국 잉글랜드에서 반역죄로 처형됩니다. 비록 제임스 6세는 어머니의 처형에 항의하고 슬픔을 느꼈을것이지만 노련한 정치가가 되는 그는 이미 잉글랜드 왕위계승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잉글랜드에 깊이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망명한뒤 왕위에 오른 제임스 6세는 사실상 주변에 가까운 친척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어린시절부터 애정에 목말라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그는 나름 노련한 정치가로 성장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나름 안정적인 왕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후계자가 될만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며 가장 가까운 적자 친척이 바로 제임스 6세였습니다. 그는 부계로건 모계로건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이자 헨리 8세의 누나였던 마거릿 튜더의 후손이었기에 헨리 8세의 가계가 끊어지고 헨리 8세가 먼저 후계자로 지정했었던 여동생 메리 튜더의 후손들이 반역죄등으로 처형되고난뒤 왕위를 이을 가장 가까운 혈족이 그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뒤 제임스 6세는 이제 잉글랜드의 국왕 제임스 1세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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