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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26) 나바라의 마리아 : 후아나 2세의 딸

엘아라 2020. 4.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나바라도 거의 다 해가는 분위기입니다. 음냐..


나바라의 인판타들...(25) 나바라의 마리아 : 후아나 2세의 딸



나바라의 마리아

아라곤의 왕비

Maria of Navarre 

French: Marie d'Évreux; 

(1329 – 29 April 1347)

마리아의 씰 


나바라의 마리아는 나바라의 여왕이었던 후아나 2세와 그녀의 남편인 펠피레 3세(필리프 데브뢰)의 둘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언니인 후아나가 있었습니다. 1333년 마리아의 언니 후아나는 아라곤의 왕위계승자였던 페드로와 결혼하기로 결정이 되었었죠. 하지만 1336년 페드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라곤의 국왕 페드로 4세로 즉위하면서 상황이 바꾸게 됩니다. 페드로 4세는 후아나가 아니라 마리아 쪽을 아내로 원하게 되었으며 결국 마리아가 언니인 후아나를 대신해서 아라곤으로 시집가기로 결정되었으며 1336년 결혼조약을 최종적으로 서명했습니다.


1337년 7월 마리아는 아라곤의 국왕인 페드로 4세와 결혼해서 아라곤의 왕비가 됩니다. 둘이 결혼한 뒤에도 아라곤과 나바라 사이에서는 마리아의 혼수를 지급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고 합니다만 나바라의 국왕 부부와 아라곤의 페드로 4세와의 사이 자체는 매우 좋았다고 합니다. 



페드로 4세


남편과 10살이나 차이났으며 겨우 10살도 안된 나이에 결혼한 마리아는 남편에게 매우 순종적인 아내였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결혼했었기에 둘의 첫아이는 결혼 6년후인 1343년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어서 딸들이 계속 태어납니다. 이것은 페드로 4세에게 후계자 문제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게 됩니다. 비록 그의 아내는 아직 어렸지만 오래도록 후계자가 없는 것은 왕국에 치명적일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347년 그는 장녀인 콘스탄사를 추정왕위계승자로 내세우려했습니다만 페드로 4세의 동생인 하이메가 이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해 4월 마리아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낳습니다만 페드로라는 이름의 이 아들은 태어난 다음날 사망했으며 마리아 역시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했습니다.




마리아


그녀의 남편인 페드로 4세는 이후 세번 더 결혼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