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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25) 나바라의 후아나 : 후아나 2세의 딸

엘아라 2020. 4.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이 집안도 이베리아 반도랑 엮여서 복잡해져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25) 나바라의 후아나 : 후아나 2세의 딸



나바라의 후아나

Joan of Navarre 

Basque: Joana, Spanish: Juana, French: Jeanne 

(c. 1326 – 3 July 1387)


나바라의 후아나는 프랑스의 공주이자 나바라의 여왕이 되는 후아나 2세와 그녀의 남편인 펠리페 3세 (필리프 데브뢰)의 장녀이자 첫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사실 그녀가 태어났을때 그녀의 어머니인 후아나는 아직까지 왕위를 얻지 못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1328년 후아나 2세가 나바라의 여왕이 되면서 첫아이였던 후아나는 자연스럽게 왕위계승자가 됩니다. 물론 이어서 동생들이 태어나고 남동생들이 태어나면서 그녀의 계승순서는 밀리게 됩니다면 여전히 여성 계승권을 가지는 나바라에서 중요한 계승자중 한명이었을 것입니다.



후아나의 어머니

나바라의 후아나 2세


후아나의 부모는 이웃의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나라들과의 동맹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죠.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결혼동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329년 나바라의 국왕 부부는 이웃 나라였던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4세와 협정을 맺어서 그들의 장녀인 후아나와 알폰소의 장남인 페드로(후에 페드로 4세)를 결혼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혼이 성사된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목적때문이었는데 후아나 2세와 펠리페 3세는 프랑스 출신으로 당연히 외교관계도 프랑스쪽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때는 백년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시기였으며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갈등이 최고조를 향해 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후아나 2세 부부는 아라곤이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을 것을 우려했고 이에 자신들의 딸을 아라곤의 왕자와 결혼시켜서 잉글랜드와의 결혼동맹을 막으려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혼담은 좀 지지부진하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후아나가 오래도록 왕위계승자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1330년과 1332년 남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아라곤과의 결혼협상이 진행되었고 결국 1333년에 나바라와 아라곤의 결혼 협상이 합의에 이르게 됩니다.



아라곤의 페드로 4세



하지만 후아나는 아라곤으로 시집가지 않게 됩니다. 대신 후아나의 동생인 마리아가 아라곤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하게 되죠. 1336년 후아나의 결혼상대였던 페드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국왕으로 즉위했는데 그는 후아나보다는 동생인 마리아를 신붓감으로 원했다고 합니다. 결국 후아나는 결혼협상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계승권리를 동생인 마리아를 위해서 포기해야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페드로 4세가 동생인 마리아를 원한것은 후아나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못할정도로 병약하거나 아니면 아이를 낳을수 없을것이라 여겨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이유로 결혼을 깨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승권리를 포기한 후아나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며 아버지에게서 연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337년 성클레어 수녀회(성 프란체스코 수도회 자매 수녀회 정도 되는듯합니다)에 가입했으며, 그해 동생인 마리아는 아라곤으로 시집가게 되죠. 이후 후아나는 줄곧 수녀원에서 수녀로 살았습니다.


재미난 것은 15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막내 여동생 역시 "후아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역사가들이나 연대기 저자들이 헷갈려한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